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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에서] 삶의 리모델링 - 이화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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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에서] 삶의 리모델링 


서울에서 나는 60여 년이란 세월을 보냈다. 그런 나를 지금의 시대는 할머니라 부르지 않는다. 이것은 내게 아직도 긴 삶이 남았다는 의미이다. 내게 남은 긴 시간을 무엇을 하며 지내야 좋을까? 어떻게 살아야 지루하지 않고 만족한 삶을 살면서 행복감을 느끼고 행복을 누릴 수 있을까?

집도 오래 살면 먼지가 끼고 낡고 지저분해진다. 구석구석 있는 지도 모르는 물건들이 먼지를 뒤집어 쓴 채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미 있던 물건들과 가구를 싹 들어내고 대청소를 한다. 손 볼 곳은 고치고, 칠도 새로 하고, 도배도 새로 한다. 여유가 있으면 디자인을 다시 해 구조도 좀 바꾸고, 새로움으로 채운다. 들어낸 물건도 쓸모 없는 것은 버리고, 남겨진 것은 새롭게 분류해 손쉽게 꺼내 쓸 수 있게 보관한다. 이렇게 집도 자주 손보고 청소하고 관리하며 살아야 한다. 우리네 삶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집을 다시 리모델링 한다고 해도 집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주변환경은 바뀌지 않는다. 삶 자체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내게는 길게 남은 삶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삶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과 생존 전략이 더욱 절실했다. 모르던 것을 알아나가고 안 해 본 것을 해보는 새로움. 그 새로움이 내게 학습의 재미와 익혀나가는 기쁨을 줄 것 같았다. 그런 삶을 위한 구체적인 준비가 필요했다. 그것은 재정문제를 해결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 여겨졌다.

아직 내게 오지 않은 미래를 불안해 하며, ‘열심히’ 자격을 갖추는 일에 집중하는 것은 고단한 삶이다. 여기서 나는 다른 각도로 생각하며, 즐거운 삶을 살기 위해 도시를 떠나고 돈 버는 일에서도 떠나기로 결정했다. 돈 쓸 일을 없애면 돈을 벌지 않아도 된다. 또한 내가 모르는 시골이 내게 새로운 삶을 주리라는 생각이 나를 잡았다.

하지만 모르는 시골의 삶에 구체적인 계획도, 재정적으로 준비할 능력이 내게는 없었다. 시골생활을 꿈꾸며 나를 살게 할 집을 만나기를 원했다. 그러다 한 후배와 놀러 간 경기도 양평의 장터에서 집 월세 광고 게시물을 보게 되었다. 작고 예쁜 집이었다. 300만원이라는 보증금에 월세 40만원의 임대 주택이지만 집이 제법 예뻤다. 하지만 겨울에 난방비가 많이 들었다. 그리고 양평에 전철이 다녀도 또 버스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곳으로 그곳은 시골답지가 않았다. 도시와 시골의 중간 형태로 서울에서 이사 온 사람들이 많았다. 내가 기대한 농촌 생활을 배울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러다 나는 전북 완주군의 한 산골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높은 산으로 사방이 둘러 싸인 곳에 양평의 집 보다는 훨씬 큰 낡은 양옥집을 만났기 때문이다. 월세가 15만원으로 지출이 줄게 되었다. 하지만 겨울의 난방비가 이곳도 만만치가 않았다. 양평의 기름 보일러나 완주의 심야전기 보일러나 월 30만원 정도로는 따뜻함을 즐길 수가 없음을 두 집에서 각기 1년여를 살면서 경험하게 되었다. 완주군의 내가 살던 곳은 전주와 붙어 있어 산골이지만 산골문화가 별로 아니었고, 사람들에게 다가가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다 나는 충남 금산의 한 귀퉁이 산골에 있는 오두막을 만났다. 내가 간절히 원하던 아궁이가 있는 집으로 지어진 지가 100년이나 된 집이었다. 아궁이가 남아있는 집을 찾아 다녔으나 그런 집을 쉽게 만날 수가 없었다. 그러다 내가 살고 싶은 삶이 점점 구체화되면서 내가 미처 꿈꾸지 못한 상세한 부분까지 딱 내게 들어맞는 집을 만난 것이다.

시골의 오두막을 누군가가 수리하여 살다가 내게까지 온 집. 내게 안성맞춤인 집이다. 가스 오븐까지 갖추어진 입식 부엌, 아궁이, 조그만 다락, 아늑한 방, 온수시설이 있는 오두막, 그래도 지붕은 기와지붕이다. 기와지붕이라는 것은 지붕에 흙을 잔뜩 이고 있다는 말이 된다. 그러니 따스하다.

시골의 오두막 집에서 장작을 때면서, 마을의 노인회관에서 할머니들과 10원짜리 민화투를 치면서 나는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면서 고통 받는 사람들이 안타깝다. 우리들이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명제를 던지면 다른 삶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준 시골 작은 마을에 있는 나의 집은 1년 임대료가 단지 50만원이다. 맑은 날이면 태양 아래에서 나는 태양을 마주하고 점심을 먹는다. 산과 골짜기, 졸졸 흐르며 빛에 반짝이는 시냇물을 보면서 나는 마냥 행복하다. 길 따라 매일 걸으면서 흥겹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사람은 한 번 설계된 삶만을 고집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각자 자신의 삶을 다시 설계하고 만들면서 새로운 자신을 창조하고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아야 하는 의무와 권리가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과도기, 각 분야에서 새로움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삶의 양식과 문화, 가치관과 경제 등 사회의 모든 영역이 새로운 가치체계를 향해 꿈틀꿈틀 움직이는 것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과거의 원칙들은 힘을 잃어 간다. 하지만 익숙함이 안전함이라 착각하는 사람들이 고집스럽게 붙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원칙과 기준은 아직 마련되지 않아 모호한 것도 현실이다. 하지만 누군가 뛰어난 리더가 그것을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다. 우리 각자가 대단한 존재이고 자신의 리더이다. 이제 우리가 원하는 세상을 명확하게 창조해야 한다. 그런 결정이 내가 정확히 몰랐던 주거 형태의 집과 산골로 안내했다. 나는 삶에서 늘 배우고, 나 자신을 창조해 가면서 인생의 새로운 막을 열었다.

나는 만족스러운 삶을 지금 산다. 새로운 것들을 익히고 알아나가면서 지루하지가 않다. 내가 살면서 의존했던 것들, 내가 버릴 것들을 버리면서 자연 속으로 조금씩 조금씩 들어가면서 행복하다.



출처: http://www.visionary.co.kr  , 이화순


불펌 금지, 작가님의 사전 허락을 받은 후에 레미쯔 커뮤니티에 올리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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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inglegend님의 댓글

시골에서의 삶! 저도 막연히 동경해왔었는데... 호롱불, 옹달샘, 피래미가 노니는 옅은 골짜기의 물, 길섶에 뒹구는 떨어져 익은 감, 사루비아가 피어있는 흙 담장... 생각만으로도 너무 좋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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