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의 온도는 몇 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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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의 온도는 몇 도일까요?
- 경북 영양 수비초등학교 6학년 1반 정여민
여름의 끝자락에 바람도 밀어내지 못하는 구름이 있다. 그 구름은 높은 산을 넘기 힘들어 파란 가을 하늘 끝에서 숨을 쉬며 바람이 전하는 가을을 듣는다. 저 산 너머 가을은 이미 나뭇잎 끝에 매달려있다고 바람은 속삭인다. 내 귓가에 속삭이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 집에는 유난히 가을을 좋아하고 가을을 많이 닮은 엄마가 계신다. 가을만 되면 산과 들을 다니느라 바쁘시고 가을을 보낼 때가 되면 '짚신나물도 보내야 되나 보다' 하며 아쉬워하시곤 했다. 그러던 엄마가 이 년 전 가을, 잦은 기침으로 병원을 찾았다가 큰 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해보라는 결과를 들었다. 우리 가족은 정말 별일 아닐 거라는 생각에, 오랜만에 서울 구경이나 해보자며 길에 올랐다. 그러나 예상과 다른 결과가 끝을 알 수 없는 어두운 터널로 밀어 넣는 것 같았다. 꿈을 꾸고 있다면 지금 깨어나야 되는 순간이라고 생각이 들 때, 아빠가 힘겹게 입을 여셨다.
"혹시 오진일 가능성은 없나요? 평소 기침 외에는 특별한 통증도 없었는데요."
무언가를 골똘히 보시던 선생님은 어떠한 말로도 대신할 수 없는 표정을 보이셨다.
우리는 한동안 병원을 떠나지 못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도 우리의 시간은 멈추어 있는 것만 같았다.
집에 오는 내낸 엄마는 말을 걸지도, 하지도 않으시며 침묵을 지켰지만 집에 도착하자마자 토할 것 같은 울음을 저 깊은 곳에서부터 쏟아내셨다. 그 울음소리가 너무 안타까워 나도 소리내어 울었다. 왜 하필 우리 집에 이런 일이 생겨야만 하는 것일까? 엄마는 한 동안 밥도 드시지 않고 밖에도 나가시지도 않고 세상과 하나둘씩 담을 쌓기 시작하셨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엄마는 어느 날, 우리를 떠나서 혼자 살고 싶다고 하셨다. 엄마가 우리에게 짐이 될 것 같다고 떠나신다고 하셨다. 나는 그 동안 마음 속에 쌓아 두었던 울분을 터뜨렸다.
" 엄마가 그러면 안되는 거잖아! 엄마는 그러면 여태껏 우리가 짐이었어? 가족은 힘들어도 헤어지면 안 되는 거잖아. 그게 가족이잖아! 내가 앞으로 더 잘할게!"
내 눈물을 본 엄마가 나를 꼭 안아 주셨다. 지금도 그때 왜 엄마가 우리를 떠나시려고 했는지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하겠다. 엄마의 건강을 위해 아빠는 직장까지 그만두시고 공기 좋은 산골로 이사를 가자고 하셨다.
우리가 이사한 곳은 애써 웃지 않아도 맑은 바람과 하늘도 웃게 하고 별빛이 부를때 별똥별을 마중 나가는 산골이다. 이사할 무렵인 산골은 초겨울처럼 춥고 싸늘하게 여겨졌지만 그래도 산골 인심은 그 추위도 이긴다는 생각이 든다. 어스름한 저녁, 동네 할머니가 고구마 한 박스를 머리에 이고 오셔서 주시기도 하고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베트남 아주머니가 봄에 말려 두었던 고사리라며 갖다 주시기도 했다. 그리고 엄마가 아프다는 사실에 함께 아파해 주셨다. 이곳 산골은 여섯 가구가 살고, 물건도 배송되지 않는 곳이다. 그래서 일부러 사람이 찾아오지 않는다면 사람 얼굴도 못보겠구나 하고 생각할 무렵, 빨간색 오토바이를 탄 우체국 아저씨가 편지도 갖다 주시고 멀리서 할머니가 보낸 무거운 택배도 오토바이에 실어 갖다 주셨다. 그것만드로도 엄마는 너무 감사해하셨는데 엄마가 암환자라는 얘기를 어디에서 들어셨는지 '구지뽕'이라는 열매를 차로 달여 마시라고 챙겨 주셨다.
나는 이곳에서 '우리 마음속 온도는 과연 몇 도쯤 되는 것일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너무 뜨거워서 다른 사람이 부담스러워하지도 않고 너무 차가워서 다른 사람이 상처받지도 않는 온도는 '따듯함'이라는 생각이 든다. 보이지 않아도 느껴지고, 말없이 전해질 수 있는 따뜻함이기에 사람들은 마음을 나누는 것 같다. 고구마를 주시던 할머니에게서도, 봄에 말려두었던 고사리를 주셨던 베트남 아주머니에게서도,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고 산골까지 오시는 우체국 아저씨에게서도 마음 속의 따뜻함이 전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이 산골에서 전해지는 따뜻함 때문에 엄마의 몸과 마음이 치유되고 다시 예전처럼 가을을 좋아하셨으면 좋겠다고 소망해 본다.
"가을은 너무 아름다운 계절 같아!"하시며 웃으셨던 그때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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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inglegend님의 댓글
만약 이 글 속의 정여민이라는 학생이 현재의 나이라면, 아닐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그렇게도 제 국민학교 시절의 정서와 닮은 부분들이 많은지요? ^^
저 또한 당시로서는 거의 불치 정도의 수준으로 알려진 폐렴, 천식을 앓고 계신 어머니와 따로 사업을 시작하신 후 결과(?)가 좋지 않아 혼자 부산에 계신 아버지를 대신하여 장남 노릇 해가며 다른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하는, 공부는 당연히 해내야 하는 장손의 역할을 해내며 힘겨운 내색 않으려고 무척 애를 썼던 시절이 있습니다!
위 정여민 친구의 글을 보며 참 여러 생각이 드네요^^
저도 6학년 1반이었던 시절이 있었구요^^
여러 가볍지 않은 시간들을 보내면서 친척 분들과 선생님 등, 다른 분들의 고마운 관심과 배려 속에 지냈으면서도,
늘 마음 속에서는 대상을 특정하지 못하는 원망과 분노만 가득했는데...
이제 와 다시 생각하면 정말 고맙고도 감사한 순간 순간들이었습니다! ^^
여민 친구와 같은 마음을 가진 친구들이 건강하고 탄탄한 마음 자세로, 그리고 고구마를 가져다 준 할머니, 고사리를 가져다 준 베트남 아주머니의 따뜻한 마음으로 따뜻한 가을과 겨울을 나는 시간들이 이어지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
또한 이렇게 '좋은 생각'과 같은 마음에 넉넉함과 따뜻함-이 마음의 온도는 다른 님의 말씀처럼 정말 측정하기 어려운 온도이겠지요^^-을 담은 글을 찾아 올려주시는 도하조 님께도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