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 시어머니의 맞춤 내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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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의 ‘맞춤 내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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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로 뭘 하냐고? 고민할 거 없다. 내복이 좋겠다.
요 앞 가게에 가서 내복 두 벌만 사 가지고 오너라. 참, 둘 다 제일 큰 걸으로 골라 오니라. 포장은 둘 중에 하나만 해달라 하고, 하나는 그냥 갖고 와."
내가 큰 시누이 생일 선물로 고민하고 있을 때, 칠순이 넘은 시어머니께서 하신 말씀이다.
나는 시어머니 말씀대로 내복을 두 벌 사 갔다.
며칠 후 큰 시누이 생일을 치렀고 시어머니는 포장한 내복을 시누이에게 선물하셨다.
'하나만 선물하시면서 왜 두 벌을 사 오라고 하셨지? 그리고 형님은 몸이 크지도 않은데, 왜 특대 사이즈로 사라고 하셨을까?'
궁금하긴 했지만 시어머니께 여쭤보지는 않았다. 또 다른 일이 있나 보다' 짐작하고는 곧 잊어버렸다.
그러다가 일흔네 번째 생신을 두 달여 앞두시고 시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 말았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생신 상은 내 손으로 정성껏 차려드리고 싶었는데…. 그토록 바라시던 손자도 안겨드리지 못했기에 더욱더 안타까웠다.
그때 나는 임신 3개월이었다. 시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 임신 소식을 알려드리자 무척 기뻐하셨다.
“출산 준비물은 이런 걸로 챙겨놓아라”, “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하나씩 준비해라”면서 좋은 말씀도 많이
해주셨다.
그런 시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신 것이었다.
시어머니는 아들 셋에 딸 셋, 육남매를 두셨는데, 둘째 시누이를 낳으신 서른넷에 갑자기 생계가 어려워졌다고 한다.
그때부터 어머니는 한복 삯바느질을 시작했고, 40년 동안을 이어오셨다.
49제를 지내고 옷장에 있는 시어머니 옷을 정리했다. 손수 만드신 당신 한복 몇 벌은 10년이 넘어 보였다.
아직 채 신어보지 못한 스타킹과 양말, 그리고 버선도 보였다. 맨 아래 서랍의 옷까지 모두 꺼냈을 때, 포장지로 싼 작은 상자를 발견했다.
'누가 볼까봐 옷장 깊숙이 넣어둔 물건이면 아주 소중한 것일 텐데….
나는 그것을 꺼내어 조심스레 펼쳐보았다. 아..…
그 상자에는 시누이 생일 때 준비했다가 전하지 않았던 내복 한 벌이 들어 있었다.
포장을 풀고 내복을 꺼내어 본 내 눈에는 벌써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내복 속에는 작은 반지까지 들어 있었다. 돌 반지였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우리 아기 반지였다.
아기 반지까지 준비해 두신 어머니는 당신 앞일을 미리 아셨던 것일까?
키가 큰 나는 가끔씩 “배구 선수 아니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큰 키에 팔다리까지 길어서, 겨울에 긴 팔 옷을 입어도 반팔 옷처럼 보이곤 한다.
짓궂은 사람들은 “춥지 않냐”, “왜 짧은 옷을 입었느냐”는 농담을 던지기도 한다.
사람들에게 그런 놀림 아닌 놀림을 받는 걸 시어머니도 아셨는지, 나를 위한 맞춤 내복을 만들어놓으셨다.
그러니까 시어머니는 시누이에게 줄 내복을 특대 사이즈로 사 가지고 오게 한 다음, 거기서 천을 잘라내 내 몸에 맞는 내복으로 고치신 것이었다.
내복 하의를 보는 순간, 다시 한 번 눈물이 터졌다. 임산부인 내가 다가올 겨울에 별다른 수선 없이 바로 입을 수 있도록, 허리 부분을 고쳐 늘려놓으신 거였다.
아이 낳은 후 바람 들지 않고 따뜻하게 입을 수 있게 하나하나 뜯어서 다시 재단하시고 고무줄까지 새 것으로 넣어 두셨다.
게다가 평생 해온 바느질로 얻은 관절염 탓에 손목과 손가락이 불편했는데도, 그 손으로 나를 위해 내복을 만들어놓으셨다.
그런데도 시어머니의 깊은 속내를 알 길 없는 나는, 무엇에 쓰시려고 내복 두 벌을 사 오라고 하셨는지 의아해하기만 했다. 그러고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모두가 잠든 밤, 내복을 입어본 나는 또다시 통곡했다. 손목의 아픔과 저림을 이겨내며 한 땀 한 땀 바느질해서 만들어주신 내복을 입었으니, 울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그 내복을 입고 그해 겨울을 보냈다. 아이를 낳기 위해 병원에 입원하러 갈 때 제일 먼저 가방에 꾸린 것도 그 내복이었다.
둘째 애를 임신했을 때도 그 내복을 입고 지냈다. 그 내복에 깃든 정성 덕분인지 둘째 애는 건강하게 태어났다.
지금도 나를 부르시는 시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얘, 밖에 고구마 장수 왔나 보다. 너 고구마 좋아하잖아. 나가서 사 오너라. 쪄서 너도 먹고 나도 좀 먹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