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 우리의 성적 체험을 어떻게 다루어야 합니까?
컨텐츠 정보
- 5,380 조회
- 2 댓글
- 목록
본문
90. 우리의 성적 체험을 어떻게 다루어야 합니까?
수치로 다루지 마라.
이건 너무나 분명한 사실이다.
또한 죄로도, 두려움으로도 다루지 마라.
수치는 미덕이 아니고,
죄는 선(善)이 아니며,
두려움은 존중이 아니기에.
그리고 욕망은 열정이 아니니 욕망으로 다루지 말고,
포기는 자유가 아니니 포기로 다루지 말며,
공격성은 간절함이 아니니 공격성으로 다루지 마라.
그리고 당연히 통제하고 억누르고 지배하려는 생각으로 다루지 마라.
이것들은 ‘사랑’과 전혀 다르니.
자, 그런데…… 단순히 신체의 만족을 위해 섹-스를 사용해도 괜찮을까?
놀랍게도 대답은 그렇다이다.
“신체의 만족”이란 그냥 ‘자기 사랑’의 또 다른 표현에 지나지 않기에.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신체의 만족에도 나쁜 딱지가 붙어왔다.
섹-스에 그토록 많은 죄가 붙어 다니는 주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너희는 신체를 만족시키기 위해
신체에 강렬한 만족을 주는 것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듣는다!
이것이 명백히 모순임은 너희에게도 분명하지만,
너희는 그 결론을 가지고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모른다.
너희가 좋게 느끼는 어떤 것을 나쁘게 느끼려 할 때,
그리고 그렇게 해서 자신을 신―
……무엇이든 너희가 좋게 느끼길 바라지 않는다고 여기는 신―
과 화해시키려 할 때, 자주 사용하는 것이 죄의식이다.
특히 너희는 육체의 기쁨을 좋게 느끼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너희 할머니들이 속삭이면서 이야기했듯이)
“섹-스……”라면 절대로 안 된다.
그런데 좋은 소식이 있다. 섹-스를 사랑해도 좋다!
또 너 자신을 사랑하는 것도 좋다!
사실상 이것은 명령이다.
너희가 도움이 되지 않는 건 섹-스(또는 다른 어떤 것)에 탐닉하는 것이다.
하지만 섹-스와 사랑에 빠지는 거라면 “괜찮다!”
다음 구절을 하루에 10번씩 외워라.
나는 섹-스를 사랑한다.
다음 구절을 하루에 10번씩 외워라.
나는 돈을 사랑한다.
이제 진짜 힘든 걸 원하는가?
그렇다면 다음 구절을 10번씩 외워라.
나는 나를 사랑한다.
너희가 사랑한다고 여기지 않는 다른 것들도 여기에 있다.
그것들을 사랑하는 연습을 하라.
권력, 영광, 명성, 성공, 승리
더 원하는가? 다음 일들을 해보라.
이것들을 사랑한다면 너희는 정말로 죄의식을 느끼리라.
남들의 아첨
더 나아지기
더 많이 갖기
방법 알기
이유 알기
이만하면 충분한가?
잠깐만! 여기 최고의 죄가 있다.
너희는 자신이, 신을 안다.
고 느끼면 틀림없이 최고의 죄의식을 느끼리라.
어떤가, 재미있지 않은가?
너희 삶 전체를 통틀어 너희는,
자신이 가장 많이 원하는 것에 죄의식을 느끼도록 길들여져 왔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바라는 것들을 사랑하고, 사랑하고, 또 사랑하라.
그것들에 대한 너희의 사랑이 그것들을 너희에게로 끌어오리니.
이것들은 모두 삶이 재료들이다.
그것들을 사랑할 때,
너희는 삶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것들을 바란다고 선언할 때,
너희는 삶이 마땅히 제공해야 할
모든 좋은 것들을 택하겠노라고 공표하는 것이다.
그러니 섹-스를, 너희가 가질 수 있는 모든 섹-스를 선택하라!
그리고 권력을, 너희가 모아들일 수 있는 모든 권력을 선택하라!
그리고 명성을, 너희가 잡을 수 있는 모든 명성을 선택하라!
또 성공을, 너희가 이룰 수 있는 모든 성공을 선택하라!
그리고 승리를, 너희가 체험할 수 있는 모든 승리를 선택하라!
하지만 사랑 대신에 섹-스를 택하지 말고,
사랑에 대한 축하로 섹-스를 선택하라.
다른 사람을 지배하는 권력을 택하지 말고,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권력을 택하라.
그 자체가 목적인 명성을 택하지 말고,
더 큰 목적을 이룰 수단으로 명성을 택하라.
남들의 희생을 대가로 한 성공을 택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을 돕는 도구로 성공을 택하라.
그리고 온갖 희생을 다 치른 승리를 택하지 말고,
남들을 전혀 희생시키지 않는 승리,
나아가 그들에게도 이득이 되는 승리를 택하라.
나아가 남들의 아첨을 선택하라.
하지만 다른 모든 사람들을 너희가 아첨으로 흠뻑 적실 수 있고,
실제로 그렇게 하는 존재로 여겨라!
나아가 더 나아지길 선택하라.
하지만 남들보다 더 나아지지 말고,
이전의 자신보다 더 나아지도록 하라.
나아가 더 많이 갖길 선택하라.
하지만 오직 더 많이 주기 위해서만 그렇게 하라.
그다음엔, 그렇다, “방법을 알고 이유를 알길” 선택하라.
그리하여 모든 지식을 남들과 함께 할 수 있도록.
그리고 온갖 수단을 다해 ‘신을 알길’ 선택하라.
아니, 사실 ‘이것을 가장 먼저 선택하라’.
그리하여 모든 사람들이 그 뒤를 따를 수 있도록.
너희는 평생 동안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좋다는 가르침을 받아왔다.
하지만 가진 것이 없으면 줄 수도 없다.
자기만족이 그토록 중요한 까닭이 여기에 있고,
그리고 그것이 그렇게 추하게 들리게 된 것이
그토록 불행한 일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우리가 지금 여기서 이야기하는 자기만족이
남을 희생한 대가로 얻는 것이 아님은 명백하다.
그것은 남들의 욕구를 무시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렇다고 삶이란 게 반드시 자신의 욕구를
무시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자신에게 넉넉한 즐거움을 주어라.
그러면 너희는 남들에게 줄 넉넉한 기쁨을 가지리니.
스승들은 섹-스에 대한 갈증으로 섹-스를 하게 되면,
네 짝을 즐겁게 해줄 능력과,
기쁨에 찬 상태로 더 오래 영혼과 육체의 결합을 체험할 능력은
오히려 크게 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런데 오히려 후자야말로
인간이 성행위를 체험하는 대단히 고상한 이유다.
그래서 탄트라의 연인들은
흔히 서로를 즐겁게 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즐겁게 한다.
이것은 빈번히 서로의 눈앞에서,
그리고 대개는 상대방의 고무와 도움과 사랑에 찬 안내를 받으면서 이루어진다.
그렇게 해서 최초의 갈증을 식히고 났을 때야, 비로소 두 사람은 더 깊은 갈증,
즉 더 오랜 결합으로 희열에 이르고자 하는 갈증을 멋들어지게 충족시킬 수 있다.
그들에게 있어 이 공동의 자기 즐김,
즉 자위는 성행위가 자신을 충분히 표현했을 때
느끼게 되는 기쁨과 쾌활함과 사랑스러움의 당당한 일부이다.
그것은 여러 부분들 중 하나이다.
너희가 삽입, 혹은 성교라고 부르는 체험은
그들의 2시간에 걸친 사랑 행위 끝에 올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너희들 대다수에 그것은 20분 동안의 힘든 운동 중에서
거의 유일한 목표나 다름없다.
그것도 운이 좋아야 20분이다!
대다수 사람들이 성행위와 그것의 가장 경이롭고
유익한 표현 방식에 대해 더 많이 배울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설명하려는 것은 더 큰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