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농부의 깨달음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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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이 괴로운 이유는 책임질 능력이 없는 나라는 허깨비 주체에게 이러저러한 책임을 추궁하기 때문에 고통이 일어나는 것이다 . 엄마의 배에서 갓 나온 아기에게는 나라는 주체 의식이 없는데 이 아이가 가상 현실 세계로 입장하여 그 사회에서 한 구성원의 역할을 감당하려면 나라는 주체 관념을 제일 먼저 세워야 한다 . 이 작업은 절대로 자연적이고 불변의 현상이 아니다 . 지구상의 어떤 생명체도 이런 일을 겪지 않는다 . 이 억울한 나에게 뒤집어씌워진 부당한 누명을 벗겨주는 것이 바로 깨달음이다 . 나는 사고 기능으로서의 주체일 뿐이지 , 삶을 주체적으로 운영하는 책임자 , 주체자로서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 서울 생활할 때 여행을 가서 한적한 숙박지에 묵게 되면 고요하고 평온함에 푹 빠져들었다 . 마당에 떨어지는 햇살들 , 그 사이에서 춤을 추는 바람과 나비 , 풀냄새와 꽃향기 , 이런 것들이 주는 풍요로움을 만끽하였다 . 나도 언제 이렇게 한적한 곳에 집을 짓고 조용하게 살게 될까를 생각하곤 했었다 . 그런데 막상 시골의 집을 짓고 사는데 그 맛이 안 난다 . 내가 다녔던 여행지의 숙소들보다 더 한적하고 아늑한데도 뭐가 다르다 . 심지어는 시골 살며 최근에 여행을 갔던 숙박지에서는 예전에 느꼈던 평화로움을 다시 느끼면서 나도 모르게 이런 고요한 곳에 살고 싶다는 망언을 서슴지 않기도 했었다 . 환장하게도 거기에는 파도 소리가 시끄러운 곳이었다 . 일 때문에 그렇다 . 막상 시골에 집 짓고 살다 보면 사방에 일이다 . 자질구레한 일들이 발길에 툭툭 채워 여기저기에 뒹굴고 있다 . 햇빛 가득한 꽃밭에는 방심하는 사이에 잔뜩 번진 쑥을 뽑다 말고 던져 놓은 호미가 보인다 . 마당에 한아름 핀 금낭화 밑에는 빨려고 모아놓은 장갑이 수북하게 쌓여있다 . 말벌이 창고 지붕 밑에 집을 짓고 있고 , 배수로에 쌓고 있던 축대가 살짝 무너져 있다 . 눈앞에 있는 모든 것들이 다 일로 보이는데 무슨 평온함이 있겠는가 . 여행지에서는 창틀에 쌓인 먼지조차도 시간과 게으름이 느껴져서 오히려 정감이 있어 보였다 . 잔뜩 어질러진 마당에 공사 자재들조차도 전혀 일거리로 보이지 않고 활개 찬마저 느껴졌다 . 내일 떠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 아무리 일이 많아도 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 인생이 그렇다 . 인생을 손님으로 사는 사람은 거칠 것이 없다 . 그러나 인생을 주인으로 사는 사람은 해야 할 일이 많고 지킬 것도 많아 수고로움이 그치질 않으며 모든 것들이 근심거리이다 . 인생의 최대 비밀은 내 일이 없다는 것이다 . 주인이 없는데 어떻게 내 일이 있겠는가 . 오직 내 일이 있다는 생각만 있을 뿐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