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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이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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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해석’을 가르치러 예술치료대학원으로 가던 오래 전 어느 날이다. 길눈이 어두워 자가용보다 대중교통을 선호하던 나는 서울 변두리의 한적한 전철역에서 내려 택시를 기다린다. 한참을 기다렸는데 택시가 없다. 수업 시작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조금 초조해진다. 옆을 보니 저만치에 자그맣고 허름한 할머니가 늦가을 찬바람에 추은 듯 구부린 몸으로 역시 차를 기다린다. 차 잡는 앞 쪽에 서있는 나를 의식하는 건지 여러 번 힐끗힐끗 처다 본다. 빨리 먼저 떠나고 싶은데, 외투 없이 추운 날씨에 떨 할머니가 왠지 딱해 보인다. 눈이 마주치자 무심코 말이 나온다.  "방향이 같으면 함께 타고 가시죠. 요금은 제가". "날이 추워서. 고마워요“

마침 할머니의 목적지도 학교 근방이다. 다행히 택시가 오고 마치 아는 사이인 양 함께 차에 탄다. 잠시 어색하고 은은한 침묵...이내 목적지에 먼저 도착한 할머니가 차에서 내린다. 왠지 낯설지 않은 느낌..."잘 가세요 할머니" "빨리 오게 해줘 고마워요“

그런데 그 순간 할머니가 주머니에서 꼬깃한 돈을 꺼내 차비를 내려한다. 당황한 나

"괜찮으니 그냥 가세요" "아니야 내가 낼 거야.." "아닙니다. 제가 낼 겁니다..."

그 순간 그 노인네가 나를 매섭게 쏘아보며 강렬한 목소리를 내던진다.

“아, 학 생이   돈 이 어딨어 ~” “.................”

그 말에 순간 어안이 벙벙해지고, 꼬깃꼬깃 구겨진 천 원짜리 지폐들이 택시기사에게 던져지고, 할머니는 저 만치 뒤돌아서 내게 잘 가라는 정겨운 손짓을 한다.

 짧은 순간 그 할머니의 강렬한 눈길이 내 눈에 꽂히며, 몸과 정신이 탁 정지된다. 

"아들아, 어이 가서 공부 열심히 하고, 잘 살기 바래! .... 얘야. 내 비록 늙었지만 아직은 힘 있는 엄마란다. 내가 널 돌봐 줄게.  나이 먹어서도 여태껏 강의 다니며 고생하는 아들아....미안하구나..."  "아니, 저 양반이 나를 ..."

할머니가 사라지고 택시에 멍하니 앉아있던 그 잠시 동안, 정신을 추스리려 애쓰며 강의실을 향해 걸어가던 그 사이에, 짙은 정서를 띤 상념들이 휙 정신에 휘몰아친다. 

 

'공부하는데 필요해요' 라는 말 한마디면 언제나 옷장 속에 은밀히 넣어둔 돈을 아낌없이 꺼내 주시던 어머니! 늦은 나이까지 공부하며 강사 생활하는 아들이 혹시라도 불편하고 위축된 마음을 가질까봐 세상 떠나시던 그 날까지 형제들 몰래 생활비를 챙겨 주시던 어머니. 세인이 부러워할 재산을 꼭 쥐시곤, 자신을 위해선 한 푼도 안 쓰시고 돌아가신 당신. 돈과 출세와 무관한 철학에만 골몰하며 살던 아들을 '저 할머니처럼' 안타깝게 걱정하시던 당신....... 

"젠장, 머리 벗겨진 중년의 선생인 제가 아직도 당신에게 학 생으로 보이세요? ... 할머니(어머니)...저 이젠 충분히 여유 있어요.  돈 때문이 아니라 '원해서' 강의하는 겁니다 !"

 모친이 사망하자  눈물이 쏟아지거나 생생하게 슬픔을 느끼지도 않은 채, 그간의 인간관계를 청산하고 내면을 치유하는 정신분석으로 전공을 바꾼 나...그제야 조금씩 보이던, 내 영혼을 마취시켜온 겹겹의 '그것'들.  내 안에 숨어있던 '그 분'을 그 날 문득 다시 만나 속으로 외친다. 

"어머니. 당신에게 받은 것도 많고 출세도 했으니 이제 더 이상 걱정하지 마세요~“

그 할머니와 나 사이에 '뭐'가 통해 말을 걸고 택시를 함께 탄 것일까? 차에서 내려 나를 바라보는 그분의 (뭔가를 애타게 해주고 싶어 하던) 그 묘한 표정.....환상을 본 것일까?

어머니는 여전히 내게 무엇이었던가? 

20여년이나 정신분석과 철학을 가르쳐온 어느덧 노쇠해가는 선생 속 아이의 음성 

“이 고집스런 노인네야(엄마) 아직도  당신이  몹시 그리워 !”

[1996 모친 사망. 1998 전이환상 체험. 2008년에 홀연 회고하며 씀. 2018년에 일부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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