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中國)이란 명칭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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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원래 ‘사이중(中)’ 에 ‘땅국(國)’ 자로 “가운데 사이의 땅” 이란 뜻으로 지어준 이름이다. 아한단군이 유위자를 국태사(國太師)로 삼은 때는 병진 30년인 BC1805년으로, 하(夏)나라가 몰락하고 상(은)나라가 시작될 무렵이다. 지나의 25사나 우리의 역사 어디에도 중국이라는 천자국(天子國)은 없다. 원래 “가운데 사이의 땅인 중국” 에 있던 나라들은 ‘가운데 사이의 땅’ 이 상징하듯이, 너무나 작은 소국(小國)들이였다.
『맹자』 의 기록에, “은(상)땅은 70리였고, 주(周)나라 땅은 100리였다.” 라고 되어 있고, 또한 “하나라 은나라 주나라의 흥성할 때의 땅(국토)은 천리를 넘지 못했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옛날 지나의 나라들은 모두 황하 아래 하남성에만 국한되어 있는 아주 작은 나라들이였다. 그래서 ‘가운데 사이의 땅’ 이란 뜻으로 중국(中國)인 것이다.
정초가 지은 『통지(通志)』와 사마광이 지은 『자치통감(資治通鑑)』의 기록을 보면, “중국의 조상은 사이(四夷)에서 생겼으며 사이는 고구려, 백제, 신라, 왜의 부족(部族) 일부에서 갈라져 나간 것이다.” 라고 되어 있다. 그들에게는 기분 나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엄격하게 따지면 중국 사람은 고구려, 백제, 신라의 지족(支族)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지금 우리가 부르는 ‘국호(國號)’ 로서의 중국은 ‘중화민국’ 의 약칭으로,1911년 손문이 호북성(湖北省) 무창(武昌)에서 3민주의 즉 민족, 민권,민생을 부르짖으며 북경에 있던 청(淸)나라를 타도하자는 신해혁명(辛亥革命)을 성공한 다음해인 1912년 1월 1일 이후부터이다.
1949년 10월 1일 모택동이 ‘중화인민공화국’ 을 건설하여 지금의 ‘중공’ 이 된 것이며, 손문의 ‘중화민국’ 의 약칭이 ‘중국’ 인 것이다. 말하자면 중국이란 정식국호는 1912년 1월 1일 이후부터 나온 신생어이다.
따라서 대만(臺灣)에 있는 중화민국의 약칭이 ‘중국’ 이고, 지나 본토에있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약칭은 ‘중공’ 인 것이다. 그럼으로, 중화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을 한꺼번에 부를 때는 옛날부터 사용했던 ‘지나(支那)’ 가 가장 적합한 명칭이다. 또 한 가지 중화인민공화국이나 중화민국의 약칭을 첫 글자인 중(中)과 끝 자인 국(國)을 따서 ‘중국’ 으로 고집한다면, 우리는 한국이라고 부르지 말고 ‘대국(大國)’ 이라고 불러야 한다. 대한민국의 첫 글자인 ‘대(大)’ 자와 마지막 자인 ‘국(國)’ 자를 따서 ‘대국’ 이라 해야 옳단 말이다. 이것이 논리적이지 않을까.
『동이배달한민족사(東夷倍達韓民族史)』, 김태영, 250〜252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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