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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혼외자로 태어나신 분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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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는 모양은 각기 다 다르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저 또한 소위 말하는 불우한 환경에서 나고 자랐으나, 적어도 저는 사랑 받으며 자랐습니다.
혼 외자로 태어난지 1~2년 정도 아버지와 살다 어머니와만 살았습니다.
이후 중학교 2학년 즈음하여 아버지와 다시 연락하며 지내게 되었죠.

저는 5~6살 쯤 부터 이미 이혼가정에 대한 자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릴때 애어른같다는 소리를 종종 들었는데, 이혼 가정으로 인해 그런것 같기도 합니다.
언제나 또래보다 성숙한 편이였고, 성인이 된 지금도 비교적 그렇습니다.
조숙?이란 단어가 맞을 진 모르겠지만, 비교적 빨리 철이 들 수밖에 없었던 제 어린 시절을 저 스스로 객관화 하여 돌이켜본다면
마냥 어리광 부리며 살 수 있는 시절이 좀 짧았던 것이 한편으로 아쉬워
나 스스로는 내 자식들에게 그런 환경을 만들어 주지 않겠다 생각하며 삽니다.
하지만 제 어린 시절을 '행복했냐' 물어보면, 그 누구보다 행복하게 살았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적어도 '사랑 받으며' 자랐던 것을 알고 있었거든요.

어머니는 노점으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가난했던 유년 시절이였지만 저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며 누구보다 저를 사랑한 것을 알았습니다.
추울 때 추운데서 일하고, 더울 때 더운데서 일하는 지독한 환경속에 그만 본인 몸을 잘 돌보지 못해 제가 고 1이 되던 시점 쓰러져
저는 사실상 그 때 부터 가장의 역할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나, 이후로나, 그 전으로나, 힘든 날도 있었으나 적어도 사랑 속에 자라날 수 있어 그 누구보다 행복했고,
학창시절도 원만한 정도가 아니라.. 사실 정말 교우관계도 좋았죠.
제가 고1 자퇴를 해야 했을 때 학교 선생님들이나 친구들이 가장 학교에 어울리는 애가 학교를 그만둔다며 아쉬워 하시던 모습들이 생각납니다.
15살 즈음, 아버지로부터 연락이 와 자신의 변명과 사정등을 이야기 할 때, 저는 더 이상 1의 원망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 변명이 있기 전부터, 저는 딱히 아버지를 원망하진 않았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저는 어릴 때 부터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어떤 사람은 양부모 밑에서 자라나지만, 어떤 사람은 편부모 밑에서 자라나고, 심지어 어떤 사람은 양 부모 모두 없이 자라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입양아로 살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정말 길거리에서 노숙자와 같이 살아가기도 하더군요.
나 정도면 행복해, 가 아니라, 그냥 이런 삶도 저런 삶도 있구나 라고 받아들인것 같아요.

한마디로 말하면 자립심? 이 생겨나지 않았나 싶습니다.
어린 그 시절의 그 환경으로 인해 말이죠.
아무튼, 그 이후, 저는 아버지와도 종종 만나며 소주한잔 하며 좋은 관계 속에 지내고 있습니다.
만약 아버지를 사랑하냐고 물어본다면, 사랑합니다.
내가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는 것을 믿느냐 하면, 그 또한 믿습니다.
늦었지만 아버지는 나를 사랑하는것을 여러번 표현하셨고, 그 표현을 저는 믿게 되었습니다.

드리고 싶은 말씀은... 적어도 글쓰신 분은 아버지로써 자식들을 사랑하고 있구나, 하는 마음이 느껴지네요.
자식들도 다알아요.. 아무리 어려도.. 지금 애들은 정보를 접하기가 더 쉬우니 충분히 자신의 상황을 조금씩 인지해 나가고 있겠죠.
할 수 있을 때, 최대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시고, 아버지가 얼마나 자신들을 사랑하는지를 충분히 표현하시고
이 상황에 대한 이해를 구하시고, 미안함도 표하시고, 어머니도 글쓰신분의 전 부인으로써가 아닌, 자식들의 어머니로써 존중해 주시고, 자식들에게 최대한 사랑을 줄 수 있는 어머니가 되주기를 바래주시고, 그랬으면 좋겠어요.

너무 마음 아파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사람은 다 각기 다른 모양으로 사니까요.
행복은 정해져 있는 모양이 있는건 아닌 것 같아요.
하지만 사랑 받으며 산다는 것, 그것은 정말 정말 중요한 부분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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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8 / 1 페이지

까망앙마™님의 댓글

저 역시 교사이신 편모 슬하에서 자라는 동안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해서는 기억이나 영향이 전혀 없는 상태로 이 나이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어떤 원망이나 미움같은 건 없고 어머니에 대한 존경심만 남았지요.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일 지도 모르겠지만요..)

남아있는 분에게 충실하는 것만이 답이 아닌가 싶습니당

livinglegend님의 댓글

구구절절 수긍이 가는 감정들이 묻어 있는 내용입니다.
이 글의 주인공이 어느 분이시든 저 또한 중1 시절부터 거의 가장 역할을 하며 살아왔다고 생각이 드니까요.
그런 여러운 시절 잊어버리지 왜 끌어 안고 사느냐고 말한다면...(동생들이 그렇게 말합니다!)
잊혀지지 않는 걸 억지로 잊을 수는 없는 것이니까요!
먹을 기회가 생겼음에도 아이스크림 하나를 마음대로 먹지 못하고, 일년 내내 동사무소에서 주어지는 구호식품(밀가루 음식)으로만 끼니를 이어가고...
수중에 생긴 단돈 몇 천원으로 거의 연중행사로 봉지 쌀을 사다 밥이란 걸 해본 적도 있고...
쉰밥을 힘부로 버리지 못하고 다시 끓여서 먹어야 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당시에는 그것이 부끄러웠을지 모르나 지금은 그냥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어리지만 당돌할만큼 생의 어려움과 맞서고 각오를 다지고 했던 시절을요...
원 글 작성자 분이 도하조 님인지 알 수 없으나 아무튼 이런 어려움 속에서 성장한 이들이 진정한 삶의 맛(?)을 아는 분들이 아닐까 합니다!
글헣든 아니든 삶의 소중함을 늘 새기며 살아가는 순간 순간들이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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