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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의 글-수기 공모 대상] 시어머니와 며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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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의 글-수기 공모 대상] 시어머니와 며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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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누이가 엄마 생각난다고, 아래의 글을 카톡으로 보내 주었습니다.
누이도 참가한 수기 공모에서 대상을 받았던 글 입니다.

❤ 시어머니와 며느리 ❤

내 나이 11살에 아버지가 돌아 가셨다.
내 아래론 여동생이 하나 있다.
전업 주부였던 엄마는 그때부터 생계를 책임지셔야 했다.
못 먹고, 못 입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여유롭진 않았다.

대학졸업 후, 입사 2년만에 결혼을 하였다.
처음부터 시어머니가 좋았다.
시어머님도 처음부터 날 아주 마음에 들어 하셨다.

10년 전, 결혼 만 1년 만에 친정엄마가 암 선고를 받으셨다.

난 엄마 건강도 걱정이었지만, 수술비와 입원비 걱정부터 해야 했다.
남편에게 얘기했다.
남편은 걱정 말라고 내일 돈을 융통해 볼 터이니 오늘은 푹 자라고 얘기해 주었다.

다음 날, 친정엄마 입원을 시키려 친정에 갔지만,

엄마도 선뜻 나서질 못하셨다.
마무리 지어야 할 일이 몇 개 있으니 4일 후에 입원하자 하셨다.
집에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그 때, 시어머님께서 전화가 왔다.
"지은아. 너 울어? 울지 말고 내일 3시간만 시간 내 다오"

다음 날 시어머님과의 약속장소에 나갔다.
시어머님이 무작정 한의원으로 날 데려가셨다.
미리 전화예약 하셨는지 원장님께서 말씀하셨다.
"간병하셔야 한다고요?" 맥 짚어보시고 몸에 좋은 약을 한 재 지어주셨다.

그리고 백화점에 데려가셨다. 솔직히 속으론 좀 답답했다. 죄송한 마음이었던 것 같다.
트레이닝복과 간편복 4벌을 사주셨다. 선식도 사주셨다.
함께 집으로 왔다.

어머니께서 그제서야 말씀하시기 시작했다.
"환자보다 간병하는 사람이 더 힘들어.
병원에만 있다고 아무렇게나 먹지 말고, 아무렇게나 입고 있지 말고.."
말씀하시며 봉투를 내미셨다.

"엄마 병원비 보태 쓰거라, 네가 시집온 지 얼마나 됐다고 돈이 있겠어.
그리고 이건 죽을 때까지 너랑 나랑 비밀로 하자.
네 남편이 병원비 구해오면 그것도 보태 쓰거라.
내 아들이지만, 남자들 유치하고 애 같은 구석이 있어서
부부싸움 할 때 꼭 친정으로 돈 들어간 거 한 번씩은 얘기하게 되어 있단다.
그니까 우리 둘만 알자."

마다했지만 끝끝내 내 손에 꼭 쥐어주셨다.
나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 시어머님께 기대어 엉엉 울고 있었다.
2천만원이였다.

친정엄마는 그 도움으로 수술하시고 치료받으셨지만,
이듬 해 봄 돌아가셨다.

병원에서 오늘이 고비라고 하였다. 눈물이 났다.
남편에게 전화했고, 갑자기 시어머님 생각이 났다.
나도 모르게 울면서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시어머님은 한 걸음에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남편보다 더 빨리 병원에 도착하셨다.

엄마는 의식이 없으셨다.
엄마 귀에 대고 말씀 드렸다.

"엄마. 우리 어머니 오셨어요, 엄마 ~”.
“작년에 엄마 수술비 어머님이 해주셨어.엄마 얼굴 하루라도 더 볼 수 있으라고".

엄마는 미동도 없으셨다. 당연한 결과였다.
시어머님께서 지갑에서 주섬주섬 무얼 꺼내서 엄마 손에 쥐어주셨다.
우리의 결혼사진이었다.

"사부인 저예요 지은이 걱정 말고. 사돈처녀 정은이도 걱정 말아요.
지은이는 이미 제 딸이고요 사돈처녀도 내가 혼수 잘해서 시집 보내 줄께요.
걱정 마시고 편히 가세요".

그때 거짓말처럼 친정엄마가 의식 없는 채로 눈물을 흘리셨다.
엄마는 듣고 계신 거였다.

가족들이 다 왔고 엄마는 2시간을 넘기지 못하신 채 그대로 눈을 감으셨다.
망연자실 눈물만 흘리고 있는 날 붙잡고 시어머니께서 함께 울어주셨다.

시어머님은 가시라는 데도 3일 내내 빈소를 함께 지켜주셨다.
우린 친척도 없다.
사는 게 벅차서 엄마도 따로 연락 주고받는 친구도 없었다.

하지만 엄마의 빈소는 시어머님 덕분에 3일 내내 시끄러웠다.
"빈소가 썰렁하면 가시는 길이 외로워".

친정 엄마가 돌아 가시고 시어머님은 내 동생까지 잘 챙겨주셨다.
가족끼리 외식하거나, 여행 갈 땐 꼭~ 내 동생을 챙겨주셨다.

내 동생이 결혼을 한다고 했다.
동생과 시어머님은 고맙게도 정말 나 이상으로 잘 지내주었다..

시어머님이 또 다시 나에게 봉투를 내미신다.
"어머님. 남편이랑 따로 정은이 결혼 자금 마련해놨어요.
마음만 감사히 받을께요"

도망치듯 돈을 받지 않고 나왔다. 버스정류장에 다다랐을 때 문자가 왔다.
내 통장으로 3천만원이 입금되었다.
그 길로 다시 시어머님께 달려갔다.
어머니께 너무 죄송해서 울면서 짜증도 부렸다. 안받겠다고.
시어머님께서 함께 우시면서 말씀하셨다.
"지은아. 너 기억 안나?
친정 엄마 돌아가실 때 내가 약속 드렸잖아.
혼수해서 시집 잘 보내주겠다고.
나 이거 안받으면 나중에 네 엄마를 무슨 낯으로 뵙겠어"

시어머님은 친정엄마에게 혼자 하신 약속을 지켜주셨다.
난 그 날도 또 엉엉 울었다.

시어머님께서 말씀하신다.
"순둥이~ 착해 빠져가지고 어디에 쓸꼬.젤 불쌍한 사람이 도움을 주지도,
받을 줄도 모르는 사람이야. 그리고 힘들면 힘들다고 얘기하고
울고 싶을 땐 목 놓아 울어버려".

제부될 사람이 우리 시어머님께 따로 인사 드리고 싶다 해서 자리를 마련했다.
시부모님, 우리부부, 동생네.
그 때 시어머님이 시아버님께 사인을 보내셨다.

그 때 아버님께서 말씀하셨다.
"초면에 이런 얘기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사돈처녀 혼주자리에 우리가 앉았음 좋겠는데... "

혼주자리에는 사실 우리 부부가 앉으려 했었다.

"다 알고 결혼하는 것이지만, 그 쪽도 모든 사람들에게 다 친정 부모님 안 계시다고
말씀 안 드렸을 텐데... 다른 사람들 보는 눈도 있고...."

그랬다. 난 거기까진 생각을 못했던 부분이었다.
내 동생네 부부는 너무도 감사하다며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내 동생은 우리 시아버지 손을 잡고 신부입장을 하였다.
내 동생 부부는 우리 부부 이상으로 우리 시댁에 잘 해주었다.

오늘은 우리 시어머님의 49제였다.
가족들과 동생네 부부와 함께 다녀왔다.
오는 길에 동생도 나도 많이 울었다.
오늘 10년 전 어머니와 했던 비밀 약속을 남편에게 털어 놓았다.
그 때, 병원비 어머니께서 해주셨다고...

남편과 난 부등켜안고
시어머님 그리움에 엉엉 울어버렸다.

난 지금 아들이 둘이다.
난 지금도 내 생활비를 쪼개서 따로 적금을 들고 있다.
내 시어머님께서 나에게 해주셨던 것처럼,
나도 나중에 내 며느리들에게 돌려주고 싶다.

내 휴대폰 단축번호 1번은
아직도 우리 시어머님이다.
항상 나에게 한없는 사랑 베풀어주신
우리 어머님이다.

어머님....
우리 어머님...
너무 감사합니다.
어머니 가르침 덕분에 제가 바로 설 수 있었어요.
힘들 시간 잘 이겨낼 수 있었고요..

어머님...
넘 사랑합니다...
그립습니다...
제가 꼭 어머니께 받은 은혜,
많은 사람들에게 베풀고, 사랑하고, 나누며 살겠습니다....
너무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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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7 / 1 페이지

livinglegend님의 댓글

지금같이 메마르고 어렵고 딱딱한, 시월드 등의 용어가 무성한 세상에 이야기 속의 시어머니는 정말 성인? 보살 같은 마음씨와 베풂을 주고 가신 분이네요^^
어떻게 이렇게 무궁한 감동적인 이야기들을 담아 오시는지 경탄스럽습니다!

사실 요즘처럼 돌아가신 어머니와 지금 병 중에 계신 장모님을 많이 생각하게 된 때가 없었는데 오늘 더 그 생각의 깊이가 더해진 것 같습니다.
오늘 우연히 길을 걷다가 제 손끝이 갈라져 쓰린 작은 불편에 짧은 고민을 했다가, 언제나 끝이 갈라지고 거칠었던 어머니의 손을 생각해내고는 울컥했었거든요!
돌이켜보면 한번도 자신의 몫으로 무언가를 챙기신 적 없었고,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아들 딸을 위해 준비하시고...
그럼에도 그런 모습들에, 어머니 당신을 챙기시지 못하는 그 모습에 일부러 아들 딸들이 짜증섞인 소리를 해도 잠깐 머쓱해하실 뿐 여전히 스스로를 돌아보시지 않던 어머니의 거친 손, 굽은 등...
딱히 장남으로 그런 불편들을 돌봐드리거나 병원에 한 번 모시지 못했지만 그런 부분들에 따뜻한 위로의 말씀 한 마디 못 드린 채 어느 해 마지막 가시던 길마저 배웅해드리지 못했던 어머니...

며느리를 딸처럼 챙긴 이야기 속의 어머니, 또 일생을 자식과 남편만을 위해 바보처럼 살다 가신 우리 어머니...
그리고 지금 또 자식만을 생각하는 소리를 하는, 사춘기 딸 아이의 어머니가 되어버린 제 아내를 생각하며 이 글을 다시 되뇌어봅니다.
이런 것이 내리사랑이란 걸까요? ^^
다시 한번 감동적인 포스팅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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