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행어사 박문수와 금비령
컨텐츠 정보
- 3,611 조회
- 8 댓글
- 목록
본문
[암행어사 박문수(朴文秀)와 금비령(禁備嶺)]
박문수는 영조(英祖)때 명 어사로 이름을 날린 인물이다.
울산 출신으로 울산 문수암에서 기도하여 낳았다하여 이름을 문수(文秀)라 지었다.
문수보살 (文殊菩薩)처럼 지혜가 박식하여 많은 중생을 구하라는 염원이 담긴 이름이라 한다.
어느 때 박문수는 어명으로 민정을 살피던 중 초행 길로 지리를 전혀 모른채 경상도 풍산땅에 들어갔다. 풍산은 산령이 풍부하고 험준한 산악지역이었다.
산이 너무 험하고 고개가 높아서 한번 넘어본 사람은 다시는 넘지않는 재(嶺)로 유명했다.
풍산은 지금의 경북 안동시 풍산읍으로 임진왜란 극복을 진두지휘한 명재상 류성룡의 본관이 바로 이 풍산 류씨 성씨의 고향으로 하회마을을 세거지로한 명문이기도 하지요.
어사 박문수가 풍산의 이 험한 고개를 넘다가 그만 지쳐 쓰러지게 되었다.
''일어나야 한다.''
박 어사는 혼신의 힘을 다해 일어나려고 했다.
배는 고프고 목은 타들어 가는데,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기진맥진하여 꼬박 사흘을 미동도 못하고 길옆에 누워 있었다.
''도와 주시오.''
구원을 요청하려고 생각은 했지만, 탈진하여 소리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물! 물!''
그러나 구원을 요청하는 소리는 모기 소리보다 약했다.
''틀렸다!''
많은 사람들이 징그러운 뱀을 보듯 그냥 지나치자..... 박 어사는 살기를 체념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대여섯명의 아낙들이 나물을 캐 가지고 내려오다 박 어사를 보게 되었다.
''웬 사람이지?''
''보아하니 미친 거지인가 봐!''
''죽었나?''
"글쎄?''
그중 한 젊은 아낙이 가까이 다가왔다.
''물! 물!''
하늘이 도왔는지 모기보다 작은 소리를 여인이 들었다.
''딱하기도 해라! 그러나, 이 높은 산골짜기에 물이 있어야지..!"
잠시 망설이던 여인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박어사 곁에 다가 앉아서 퉁퉁 불은 희멀겋고 풍만한 젖을 꺼내 박어사에게 물렸다.
''어머, 세상에!''
''망측하게 젊은 여자가....''
''외간 남자에게 젖을 물리다니!''
아낙들은 놀란 얼굴을 하고 한마디씩 했다.
박어사는 갓난아이가 어미 젖을 빨듯이, 정신없이 젊은 여인의 젖을 한참 빨고 나니 갈증이 한결 가시게 되었다.
''부인, 정말 고맙습니다.''
박어사는 진심으로 생명의 은인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여인은 무거운 나물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박어사를 부축하여 천천히 고갯길을 내려왔다.
한편, 앞서 내려갔던 아낙들은 입에 거품을 물고, 입방아를 찧어대고 있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그래요, 미치지 않고서야 서방 있는 년이 그따위 짓을 할 수가 없지.''
소식을 전해들은 여인의 서방되는 작자가 몹시 분노했다.
몸을 부르르 떨면서 빠드득 이를 갈았다.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다!
세상에 어느 남자가 그런 일을 용서할 수 있겠는가?''
한참 후에 박어사를 부축한 여인이 마을로 내려왔다. 마을 사람들은 진상을 확인하기 위해서 삼삼오오 모여들며 수군거리고 있었다.
''세상에 정말이야?''
마을사람들이 이런 말을 하고 있을 때, 두사람을 향해 나는듯이 뛰어가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그 부인의 서방이었다.
''이 화냥년!''
서방은 흥분하여 마구 아내를 때렸다.
정신없이 얻어맞고 있을 때, 박어사가 남자의 매질을 막으며 말했다.
''잠시 참고, 내말 좀 들어 보시오!''
''뭐라고?''
아내를 때리던 남자는 다짜고짜 박어사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어이쿠!''
몸이 온전하지 못한 박어사는 코피를 쏟으며 벌렁 뒤로 나자빠졌다.
''이 새끼 ! 죽여 버리겠다!''
남자는 쓰러져 신음하는 박어사를 향해 사정없이 발길질 했다.
마을 사람들은 구경만 할뿐 아무도 말리는 사람이 없었다
''앗!''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의 입에서 놀란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암, 암행어사다!''
이 말에 모두가 소스라치게 놀라 땅에 쓰러진 박어사를 내려다 보았다.
발길질을 피하느라 몸부림치던 통에 허리춤에 차고있던 마패가 드러난 것이었다.
발길질을 하던 남자의 얼굴은 금세 새파랗게 질렸다. 구경을 하던 사람들도 반쯤 얼이 빠져 있었다.
''하이고!''
부인의 남편은 박어사 앞에 무릎을 꿇고 싹싹 빌었다. ''죽을 죄를 졌습니다.
제발, 이놈의 목숨만 살려 주십시오''
박 어사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켜 남자를 보았다.
''제기랄, 사람보다 마패만 무섭구나!"
이렇게 투덜거리다가 근엄하게 말을 이었다.
''오늘, 나는 당신의 아내 덕에 목숨을 건졌소."
''만일, 당신의 아내가 실로 행하기 어려운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면 나는 죽은 목숨이었을 것이오.''
''그러나, 당신의 행패는 너무 극심했소.
전, 후 사정을 알아보지도 않고 그렇게 사람을 때리는 법이 어디에 있소?''
"무고한 사람을 때린 죄, 당장 벌을 주어야 마땅하지만, 당신 아내의 은혜 때문에 오늘은 그만 물러 가겠소.
집에서 근신하고 기다리시오''
박 어사는 이렇게 말하고는 마을을 떠났다
''아이구야! 이제 죽었구나''
암행어사를 때린 남편으로서는 지옥문을 눈앞에 둔 사람의 심정일 수 밖에 없었다.
며칠이 지난 후, 관아에서 출두 명령이 왔다.
두 부부가 벌벌떨며 동헌에 나아가니, 감사와 함께 나란히 앉아있던 박어사가 부드럽게 남편을 타이른 후에, 이렇게 덧붙였다.
''부디, 아내를 아끼고 사랑해 주시오.
생명을 구해준 은혜에 보답하고자 얼마간의 전답을 준비하였으니 행복하게 잘 살기 바라오''
두 부부는 감격하여 돌아갔다.
이때부터 그 고개를 ''금비령(禁備嶺)''이라 하고, 준비없이는 그 고개를 넘지 말 것을 경고하였다.
어느 기록에서는''금패령(禁牌領)''이라고도 한다.
-역사학자 신호웅 박사 에세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