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통일운동가 백기완 선생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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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완 선생님은 황해도 은율군 출신으로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수해나 지진 피해 등을 구휼을 하는 등 훌륭한 집안에서 자랐죠
조부가 천석꾼 부자셨는데 3.1 운동시 태극기 수천장을 제작하여 나눠주기도 하고
백범 김구 선생님이 1898년 치하포 사건으로 수감되었다가 탈옥후 도피시
조부인 백태주가 극진히 돌봐 주었다고 합니다.
이때 백기완 선생이 백범을 따르고, 백범도 백기완 선생을 좋아해서,
백범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후 조부가 독립군에 군자금을 보내다가 발각되어 일제에 체포,
고문 끝에 옥사를 당하여 집안이 몰락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1960년대 한일협정 반대투쟁으로 민주화 운동에 투신
1974년 유신헌법철폐 100만인 선언 운동, 3선 개헌 반대, 유신 철폐 등 을 주도하다
긴급조치 1호 위반 협의로 체포되어 수감되고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 원작자이자
'장산곶매 이야기' 등을 쓴 문필가이기도 합니다.
1987년 대선에서는 독자 민중후보로 출마했다가 김영삼·김대중 후보의 단일화를 호소하며
사퇴했으며 이후에는 자신이 설립한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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