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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한 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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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한 소수>
러시아 볼가강 연안의 작은 마을에서 6명의 자녀 가운데 셋째로 태어난 레닌은 맏형인 울리야노프를 무척 좋아했다. 대학교에서 극좌 운동에 가담했던 울리야노프가 알렉산드르 3세의 암살 계획 혐의에 연루되어 처형당하자 당시 17세였던 레닌은 형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레닌은 마르크스주의에 심취하기 시작했다. 변호사가 된 레닌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마르크스에 대한 지식의 폭을 넓히며 ‘노동계급 해방 동맹’을 조직하여 반사회 투쟁을 하다 체포되어 5년간 시베리아에서 유배 생활을 하다 서유럽으로 망명했다. 망명에서 돌아오자 러시아에는 ‘피의 일요일’ 사건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레닌은 '즉각 노동자들이 권력을 잡아야 한다.'라고 생각하여 본격적인 혁명조직 볼셰비키(레닌이 인솔한 급진적 공산주의 정당)를 만들어 격렬한 저항운동을 펼쳤다. 그러나 친위 쿠데타가 일어나 혁명지도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가 시작되자 레닌은 2차 망명을 했다.
스위스 취리히에 망명 생활 중, 4년간이나 지속된 세계 1차 대전으로 추위와 굶주림에 지친 러시아 민중은 노동자와 군인이 주축이 되어 대규모 폭동을 일으켜 니콜라이 2세를 몰아내고 사회주의자들이 주도하는 임시 정부를 수립하였다. 이 소식을 듣고 러시아로 돌아온 레닌은 군중 앞에서 “우리에게는 '자유주의 국가'나 민주주의는 필요하지 않다. 노동자, 농민, 소비에트 이외에 그 어떤 정부도 필요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프롤레타리아(사회적 하위계급으로 치부되는 노동자, 농민)가 지배하는 독재'이며. 자유주의, 민주주의, 부르주아적인 요소는 일절 거부한다.”라고 외쳤다. 본격적인 사회주의 공화국의 서막이 피어올랐고, 레닌의 후계자 스탈린에 의해 그 체제는 고착되었다.
사실 그 당시만 해도 급진적인 공산주의 세력인 볼셰비키 정당은 소수에 불과했다. 훗날 정권을 완전히 장악한 레닌은 이렇게 말했다. "하나의 민주적 정부를 전복시키기 위해서는 비록 총 국민투표의 10%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강인하게 훈련된 소수정예의 공산주의자가 필요하다.”라고. 섬뜩하지만 일리 있는 말이다. 극성스럽고 열렬한 소수의 힘은 강력하다. 선구자적인 소수가 우매한 다수를 이끌어 역사와 문명을 발전시키기도 하지만 이와 반대로 강경한 의견을 가진 소수의 주장에 많은 사람이 편승함으로써 민주주의나 사회가 위협을 받는 경우도 허다하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국민의 동조와 협력이 있어야 되지만 세상을 전복시키는 것은 극렬한 소수만으로 가능하기 때문이다.
출처 - 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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