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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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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
슬픔을 탈탈 털어 햇빛에 말려도
뽀송뽀송해지지 않던 날들
그리운 얼굴은 어디로 갔을까 생각할 때마다
푸른 물방울무늬를 하나씩 허공에 그렸어요
언니의 손을 놓치고
낯선 아저씨가 내민 손에 울음을 내려놓으며,
마취도 없이 의사의 수술칼이 내 귀를 건드린 후
이겨내지 못할 아픔도 있다는 걸 일찍 배워버린 곳
오래도록 내 몸에 머물렀던 불운마저
친구처럼 편안하게 느껴지기도 했지요
낯설어진 이름들이 가끔은
가족이라는 얼굴로 다시 모이기도 했지만
어디론가 숨어버린 오빠의 이름은
꺼내서는 안 되는 비밀이어서
봄날 대나무 숲에는 새소리 대신
독 품은 뱀들만 알을 낳아 제 식구를 늘려가곤 했습니다
잠시 눈물을 닦기도 했던,
나는 어디쯤에서 사라진 얼굴일까요
푸른 물방울무늬 원피스를 입은 계집애
은목서꽃 향기 날리는 골목길에서
시간의 조각을 흔들며 달려오고 있어요
- 김밝은, 시 '흔적'
흔적을 만지면 유난히 떠오르는 기억이 있지요.
그 기억과 함께 달려 나오는 얼굴들이 있습니다.
이번 명절엔 그리운 이들과 만나는 걸 미루지만
마음만은 가까운 추석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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