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하느님이 의자를 만들 때 그 곁을 달려가던 말의 영혼을 불어넣었다 목뼈를 곧게 펴고 먼 곳을 바라보는 자세에 안장을 얹은 것도 하느님의 전직인 목수였다 사람들이 목뼈에 등을 기대고 돌아앉을 때 의자는 혼이 떠난 사물일 뿐 아이들이 가끔씩 거꾸로 앉아 소리칠 때 온몸을 부르르 떨며 의자에 깃든 말의 영혼은 눈을 뜬다
그때마다 어디선가 또각또각 말발굽 소리 들려온다
- 박현수, 시 '의자'
꼬박 걸어온 발품이 풀썩 앉는 의자. 다리를 꼬아 앉아도 마음을 꼬지 않는 의자. 다소 과한 체중이 실리면 잠시 삐걱거리기만 할 뿐인 의자. 묵묵한, 이해심 많은 사람 같은 의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