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 저희가 잠을 자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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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저희가 잠을 자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영혼은 항상 너희 몸을 떠난다.
너희 생애 내내 줄곧.
이것이 우리가 잠을 발명한 이유다.
너희가 그렇게 하려고만 하면,
영혼은 너희 생애 내내
주기적인 재충전으로 기운을 되찾을 것이다.
몸이라 부르는 이 탈것을
자신이 계속해서 끌고 다닐 수 있도록.
너는 영혼이 몸에 깃드는 것이 쉬운 일이라고 생각하느냐?
그렇지 않다. 그건 간단할지는 모르지만, 쉽지는 않다!
그건 기쁨일지는 모르지만, 쉽지는 않다.
그것은 너희 영혼이 지금껏 해온 일들 중에서 가장 힘든 일이다.
너희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가벼움과 자유를 아는 영혼은,
다시 한번 그런 존재 상태가 되기를 갈망한다.
학교를 좋아하는 아이라도 여름방학을 애타게 기다릴 수 있고,
남들과 어울리기를 원하던 사람이라도
어울리는 동안 혼자이기를 갈망할 수 있듯이.
영혼은 가벼움이자 자유고, 평화이자 기쁨이며,
무한함이자 고통 없음이고, 완벽한 지혜이자
완벽한 사랑이라는 자신의 참된 존재 상태를 추구한다.
영혼은 이 모든 것인 동시에 그 이상이다.
그럼에도 영혼은 몸을 갖고 있는 동안
이 소중한 것들을 거의 체험하지 못한다.
그래서 영혼은 자기하고 의논했다.
영혼은 지금 선택하는 대로의 자신을 창조하고 체험하기 위해서,
필요한 만큼 얼마든지 오래 몸을 가진 채 머물겠노라고 자신에게 통고했다.
다만 원할 때마다 몸을 떠날 수 있다는 조-건에서만!
영혼은 소위 잠이라는
체험을 통해서 날마다 이렇게 하고 있다.
영혼이 휴식을 원하기에,
몸더러 “잠에 빠지게” 만드는 것이다.
영혼이 몸을 가진 데서 오는 그 한계들에 지치고,
그 힘겨움과 자유 없음에 지쳤을 때,
영혼은 말 그대로 몸을 쓰러뜨린다.
(때로는 서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영혼이 “재충전하려” 할 때,
영혼이 그 모든 비진리와 거짓 현실과 상상으로
그려낸 위험들에 지쳐 기진맥진해졌을 때,
영혼이 다시 한번 연결되고, 확인받고,
휴식하고, 마음을 위해 다시 깨어나고자 할 때,
영혼은 그냥 몸에서 떠나버린다.
몸을 처음 받아들이는 영혼은
그것이 극히 힘든 체험이란 걸 알게 된다.
그것은 특히나 새로 도착한 영혼에게는
대단히 피곤한 체험이다.
아기들이 잠을 많이 자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시 한번 몸에 소속되는 최초의 충격을 극복하고 나면,
영혼은 그 면에서 참을성을 키워가기 시작한다.
이제 영혼은 좀 더 오래 몸에 머문다.
이와 동시에 마음이라 불리는 너희 부분은,
애초부터 예정되어 있던 대로 망각 속으로 옮겨간다.
이제는 덜 빈번하긴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대체로 하루를 주기로 해서 이루어지는,
몸을 벗어나는 영혼의 비행조차 마음을
항상 기억으로 데려가 주지는 못한다.
사실 이 시기 동안 영혼은 자유로울지 모르지만,
마음은 혼란스러울 수 있고,
이 때문에 너희 존재 전체로서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거지?
나는 여기서 뭘 창조하고 있지?”라고 묻게 된다.
이런 탐색은 변덕스런 여행,
때로는 무섭기까지 한 여행,
너희가 “악몽”이라 부르는 여행을 불러올 수 있다.
때로는 정반대의 일이 일어나,
영혼이 위대한 회상remembering의 자리에 도달할 수도 있다.
이제 마음은 각성을 얻게 되니,
덕분에 영혼은 평화와 기쁨으로 충만하다.
그렇게 되면 너희는 몸으로 돌아오고 나서도
몸 안에서 이것들을 체험할 수 있다.
너희의 전 존재가
이 같은 원기 회복을 더 많이 자신할수록,
그리고 그것이 몸을 가지고 하는 것과
하려는 것이 뭔지 더 많이 기억해 낼수록,
이제 자신이 이유가 있어서,
목적을 갖고 몸으로 왔음을 아는 너희 영혼은
몸에서 벗어나기를 덜 원하게 된다.
이제 영혼의 바람은
그 목적에 자신을 일치시키는 것,
자신이 지닌 몸을 가지고
그 모든 시간을 가장 잘 이용하는 것이다.
위대한 지혜를 가진 사람은
잠을 잘 필요가 거의 없다.
그 사람이 얼마나 많은 잠을 필요로 하는가로
그 사람이 얼마나 진화되었는지 알 수 있다는 말씀입니까?
거의 그렇다. 거의 그렇다고 말해도 좋다.
하지만 영혼은 이따금 순전히 몸에서
벗어나는 기쁨만을 위해 몸을 떠나기도 한다.
마음을 위해 다시 깨어나고,
몸을 위해 기운을 되찾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하나임’을 아는 황홀경을
다시 창조하고 싶어서일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잠을 많이 자는 사람일수록
덜 진화되었다고 말하는 게 항상 타당하지는 않다.
그럼에도 자신이 몸을 가지고 뭘 하는지와
자신은 몸이 아니라 몸을 가진 존재임을
더 많이 자각하게 될 때,
그들은 몸과 더불어
더 많은 시간을 보내려 하고 보낼 수 있다.
따라서 그들이 그만큼 “잠을 덜 필요로 하는”
것처럼 보이는 건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나아가 몸을 가진 존재로서의 망각과
영혼의 ‘하나됨’ 둘 다를 한꺼번에 체험하려는 존재들도 있다.
이런 존재들은 여전히 몸을 갖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일부를 몸과 동일시하지 않도록 훈련시킴으로써,
‘참된 자신’을 아는 황홀경을 체험할 수 있다.
그렇게 하기 위해 굳이
인간으로서의 자각을 잃거나 하는 일 없다.
너희가 자각을 할do 수는 없다.
너희는 오직 완전한 자각일be 수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