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 지금 인류의 진화 수준은 어디쯤 와 있습니까? 진화가 더딘 이유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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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 지금 인류의 진화 수준은 어디쯤 와 있습니까? 진화가 더딘 이유는 무엇인가요?
너희는 아직 유치원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너희는 영아원에 있다.
너희 중 대다수는 자신들이
아직 유치원으로도 진화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인류가 아직도 영아원에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이 인정하지 못함 자체가
그들을 그곳에 붙잡아 두고 있다.
깨달음은 “있는 것”을
판단 없이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있음Isness 속으로 옮겨간다고 하는 것이 이것이다.
자유를 찾게 될 곳이 바로 이 있음에서다.
저항하는 건 지속되고,
살펴보는 건 사라진다.
다시 말해 그것은 환상적 형태를 갖기를 그만두니,
너희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 본다.
그리고 있는 건 언제나 바뀔 수 있다.
바뀔 수 없는 건 있지 않은 것뿐이다.
그러니 있음을 바꾸려면 그 속으로 옮겨가라.
그것에 저항하지 말고,
그것을 부정하지 마라.
너희는 자신이 부정하는 것을 선언하고,
자신이 선언하는 것을 창조한다.
뭔가를 부정하는 행동 자체가
그것을 거기에 자리 잡게 하니,
어떤 것을 부정하는 건 그것을 재창조하는 것이다.
어떤 것을 인정할 때는
그것을 통제할 수 있지만,
부정하는 건 그것이 거기 있지 않다고 보는 것이니,
너희는 그것을 통제할 수 없다.
따라서 너희가 부정하는 것이 되려 너희를 통제하게 된다.
너희는 너희 아닌 것(고도로 진화된 존재)이 되는 데
너무 깊이 몰두한 나머지,
너희인 것(진화하는 존재)이 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너희는 자신에 맞서 움직이고,
자신과 싸우고 있는 셈이니,
그 때문에 무척 느리게밖에 진화하지 못하고 있다.
진화로 가는 지름길은 없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사회나 존재가 더 많이 승격할수록
그 즐거움도 더 고상해진다.
너희가 무엇을 ‘즐거움’이라 부르는지가
너희의 진화 수준을 선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