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 우리가 진리라고 믿고 있는 믿음을 고수하지 말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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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 우리가 진리라고 믿고 있는 믿음을 고수하지 말라고요?
문제는 자신이 지금 지닌 가치관이 옳고 완벽한 것이니,
나머지 다른 사람들도 그것을 신봉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은 사람들이 고집한다는 데 있다.
너희 중에는 지극히 독선적으로
자신을 정당화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믿음이 너희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것을 고수하라.
붙들고 포기하지 마라. “옳고 그름”에 대한
너희의 견해는 ‘자신이 누군가’에 대한 규정이다.
하지만 남들에게 너희식으로 규정하라고 요구하지는 마라.
그리고 너희의 지금 믿음과 관행들에
너무 “얽매인” 나머지, 진화 과정 자체를 멈추게 하지는 마라.
사실 삶이란 너희가 있든 없든 계속되기 마련이니,
그렇게 하기를 원하더라도 너희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어떤 것도 똑같이 남아 있지 않으며,
어떤 것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일 수 없다.
변하지 않는다는 건 움직이지 않는 것이고,
움직이지 않는 건 죽은 것이다.
삶의 모든 것이 운동이다.
바위조차 운동으로 가득하다.
모든 것이 움직인다.
그야말로 모든 것이.
움직이지 않는 건 아무것도 없다.
따라서 운동한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한순간에서 그다음 순간까지 똑같은 건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똑같이 남는 것,
혹은 똑같이 남으려 하는 것은
삶의 법칙에 맞서는 것이니,
이건 어리석은 짓이다.
이 투쟁에서는 언제나 삶이 이길 것이다.
그러니 변하라!
그렇다, 바꾸어라!
“옳고” “그름”에 대한
너희의 견해를 바꾸고,
이것과 저것에 대한
너희의 관념을 바꿔라.
너희 뼈대를 바꾸고,
너희 체계를 바꾸고,
너희 모델을 바꾸고,
너희 이론을 바꾸어라.
가장 심오한 너희 진실들도 바뀌게 놔둬라.
부디 그것들을 너희가 손수 바꿔라.
나는 완전히 말 그대로의 뜻으로 말하고 있다.
부디 그것들을 너희가 손수 바꿔라.
자신에 대한 새로운 발상 속에 성장이 있고,
‘있는 그대로’에 대한 새로운 발상 속에서 진화가 촉진된다.
그것이 누구고, 무엇이고, 어디고,
언제고, 어떻고, 왜 그런가에 대한
너희의 새로운 발상 속에서 수수께끼가 풀리고,
음모가 드러나며, 이야기가 끝난다.
그러면 너희는 새로운 이야기,
더 멋진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다.
어떤 것에 대한 새로운 발상 속에는
흥분이 있고 창조가 있다.
‘너희 안의 신’이 뚜렷이 드러나
충분히 실현되는 지점 또한 여기다.
너희 생각에 아무리 “좋았다”고
보이는 상황이라도 더 좋아질 수 있고,
너희 생각에 아무리 근사해 보이는 신학과
이데올로기와 우주철학이라도
훨씬 더 큰 경이로 충만할 수 있다.
“천지간에는 너희의 지혜로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열려 있으라, 열려 있으라.
너희가 옛 진리로 편안했다 해서,
새로운 진리의 가능성까지 닫아버리지는 마라.
삶은 너희의 안전지대가 끝나는 곳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성급하게 다른 사람을 판단하지 마라.
차라리 판단을 피하고자 하라.
다른 사람의 “그름”은
어제 아침 너희의 “옳음”이었고,
다른 사람의 잘못은
지금은 바로잡은 과거의 너희 행동이며,
다른 사람의 선택과 결정들이 “상처 주고” “해롭고”
“이기적이고” “용서할 수 없”듯이
너희 자신의 허다한 선택과 결정들도 그러했으니.
다른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도무지 상상할 수 없을” 때,
너희는 자신이 어디서 왔고,
자신과 그 사람 둘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잊고 있다.
그리고 너희 중에 자신을 나쁜 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자신이 하잘것없고 구제 불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말하노니,
너희 중 영원히 길을 잃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없을 것이다.
너희 모두, 모두가 되어 가는 과정 속에 있고,
너희 모두, 모두가 진화를 체험해 가는 중이기에.
이것이 내가 꾀하는 일이다.
너희를 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