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 “더 나은 삶”이란 어떤 삶입니까?
컨텐츠 정보
- 3,283 조회
- 2 댓글
-
목록
본문
127. “더 나은 삶”이란 어떤 삶입니까?
너희는 “더 낫다”는 걸 어떤 식으로 정의하는가?
너희는 “삶”이라는 걸 어떤 식으로 정의하는가?
너희가 더 크고 더 좋고 더 많은 돈과 권력과 섹-스와
가재도구(집, 자동차, 옷, CD 소장품 따위들)를 “더 나은” 것으로 정의하는 한……
너희가 이번의 출생에서 죽음까지의 기간을 “삶”으로 정의하는 한,
너희는 너희 행성의 곤경을 창조해 낸 덫에서 벗어날 어떤 일도 할 수 없다.
하지만 너희가 너희의 웅장한 ‘존재 상태’를
더 넓게 체험하고 더 위대하게 표현하는 것을 “더 나은” 것으로 정의하고,
“삶”을 ‘존재’의 영원히 계속되고 결코 끝나지 않는 과정으로 정의한다면,
너희는 멀지 않아 너희의 길을 찾아낼지도 모른다.
“더 나은 삶”은 물질이 쌓여서 창조되는 게 아니다.
너희 대다수가 이 사실을 알고 있고,
너희 모두가 그걸 알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너희의 삶과 너희가 삶을 끌어가면서
내리는 결정들은 다른 무엇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아니 대체로 그것들보다 더 많이 “물질”과 관련이 있다.
너희는 물질을 얻으려고 애쓰고, 물질을 얻기 위해 일한다.
그리고 원하는 것을 어느 정도 얻고 나면,
너희는 절대 그것을 손에서 놓으려 하지 않는다. (소수지만 다른 집단이 있다)
이 집단은 물질에 대한 욕구에서 벗어나 있다.
이 집단이 몰두하는 건 영적 진실과 영적 실체, 영적 체험이다.
이 집단의 사람들은 삶을 영적인 만남, 영혼의 여행으로 본다.
그들은 이런 맥락 안에서 모든 인간사들에 반응하고,
모든 인간 체험을 이 패러다임 안에서 파악한다.
그들의 투쟁은 신을 찾고, 자아를 실현하며,
진리를 표현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그들이 진화하면, 이 투쟁은 더 이상 투쟁이 아니라 과정process이 된다.
그것은 ‘자기 규정’(자기 발견이 아니라)과
‘성장’(배움이 아니라)과
‘존재’(행위가 아니라)의 과정이 된다.
구하고, 애쓰고, 찾고, 뻗고,
성공하는 이유가 완전히 달라지고,
어떤 일을 하는 까닭이 변하니,
그와 더불어 그 일을 하는 사람 역시 변한다.
과정이 그 이유가 되니,
행위자는 존재be―er가 된다.
예전에는 평생 구하고, 애쓰고,
열심히 일하는 이유가 세속의 것을 마련하는 데 있었지만,
이제는 그 이유가 하늘의 것을 체험하는 데 있다.
예전에는 주요한 관심이 몸에 대한 것이었지만,
이제는 주요한 관심이 영혼에 대한 것이다.
모든 것이 움직이고 모든 것이 변한다.
삶의 목적이 바뀌고, 따라서 삶 자체도 바뀐다.
“위대해지려는 동기”도 변하니,
그와 더불어 세속의 부를 탐내고
확보하고 지키고 늘리려던 욕구도 사라진다.
사람들은 더 이상 위대성을 그 사람이
얼마나 많이 쌓아 두는가로 평가하지 않을 것이고,
세상 자원들은 세상 모든 사람의 소유임을 당연하게 여길 것이다.
모두의 기본 욕구를 충족하기에 충분할 만큼
풍요로움으로 축복받은 세계이기에,
그 기본 욕구는 당연히 충족될 것이다.
누구나 세상이 그런 식으로 존재하길 원할 것이다.
수확이 적은 사람들을 돕는 정책에 쓰도록
너희 모두가 너희 수확과 풍요의 10%를 자발적으로 내놓을 것이니,
더 이상 누구도 내키지 않는 세금을 낼 필요가 없을 것이다.
식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모두에게 식량이 돌아가게 만들
간단한 정치체계를 창조하려는 의지가 부족해서,
몇천 명의 사람들이 다른 몇천 명의 굶주림을
방관하는 일도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너희가 위대해지려는 동기와 위대함에 대한 규정을 바꾸는 날,
지금 미개한 너희 사회에서 일상사가 되고있는
그같은 도덕적 추잡성은 영원히 사라질 것이다.
너희의 새로운 동기는 내가 창조했던 대로의 너희가 되는 것,
즉 신성(神性) 자체를 물질적으로 표출하는 것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