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 우리가 얼마나 멀리, 높이, 진보했는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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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우리가 얼마나 멀리, 높이, 진보했는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너희가 얼마나 멀리 진보했는지 알려면,
얼마나 높이 진화했는지 재어보려면,
자신을 “기분 좋게”하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면 된다.
“기분 좋은 것”은 영혼이 “여기요”라고 말하는 방식이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기분 좋은 일을 한다”는
이런 관념을 통째로 경멸하고 있다.
그들은 이것이 지옥으로 가는 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내가 이르노니,
이것은 천국으로 가는 길이다!
물론 네가 어떤 것을 “기분 좋다”고 하는지,
다시 말해 네게는 어떤 종류의 체험이
기분 좋게 느껴지는지에 많은 것이 좌우된다.
그런데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정으로는 어떤 종류의 진화도 이룰 수 없다.
만일 너희가 진화한다면,
그것은 너희가 아는 “기분 좋은” 것을
자신에게 부정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에게 이런 즐거움을 부여하여,
거기서 훨씬 더 뛰어난 뭔가를 찾아냈기 때문일 것이다.
너희가 한 번도 “더 못한” 것을 맛본 적이 없다면,
어떻게 “더 뛰어난” 것을 알 수 있겠는가?
“기분 좋은 것”은 자신의 방금 생각이 진리이고,
방금 말이 지혜이며,
방금 행동이 사랑임을 자기 스스로 이야기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기분 좋은 것을 부정하거나,
그것에서 물러서는 것으로 자신의 진화를 몰아세우지 마라.
더 멀리 더 빨리 진화하려 하지 마라.
자기 부정은 자기 파멸일 뿐이니.
그리고 자기 조절은 자기 부정이 아님도 알아두어라.
자신의 행동을 조절하는 것은
자신에 관한 나름의 판단에 근거하여,
어떤 것을 하거나 하지 않겠다는 능동적인 선택이다.
자신을 남들의 권리를 존중하는 사람으로 선언할 때,
그들에게서 훔치거나 빼앗지 않겠다는 결정,
강탈하고 약탈하지 않겠다는 결정은 “자기 부정”과는 거리가 멀다.
그것은 자기 선언이다.
무엇이 그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가가
그 사람의 진화 정도를 재는 척도가 된다고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무책임하게 행동하고, 남들에게 해를 입히거나,
곤경이나 고통을 가져올지도 모르는 방식으로 처신하는 게
너희를 기분 좋게 만든다면,
너희는 그다지 많이 진화하진 못했다.
여기서의 열쇠는 자각이다.
그리고 젊은이들 사이에서 이런 자각을 일궈내고
넓혀가는 것이 너희 가정과 공동체에 속한 어른들의 과제이다.
그것은 신의 사자가 해야 할 직무가
모든 사람 사이에서 자각을 넓혀,
한 사람에게 한 일이 모두에게 한 일이 되고,
한 사람을 위해 한 일이 모두를 위해 한 일임을
이해하게 하는 것과 비슷하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하나이기에.
너희가 “우리 모두는 하나”라는 사실에서 출발할 때,
다른 사람에게 해를 입히고 “기분 좋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니, 소위 “무책임한 행위”는 사라진다.
진화하는 존재가 삶을 체험하려는 것은
이런 제한 범위 내에서이며,
내가 너희더러 삶이 제공해야 할 모든 것을
가지도록 허락하라고 말한 것도 이런 제한 범위 내에서이다.
그러면 너희는 삶이 지금껏 너희가 상상해 온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제공함을 볼 것이니.
너희는 자신이 체험하는 존재이다.
너희는 자신이 표현하는 것을 체험하고,
자신이 표현해야 하는 것을 표현하며,
자신에게 허용하는 것을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