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 저희가 섹-스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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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저희가 섹-스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나요?
만일 너희가 어떤 놀이들을 하는 걸 내가 원치 않았다면
나는 너희에게 그런 장난감들을 주지도 않았을 것이다.
너희는 너희 자식들이 갖고 놀지 말았으면 하는 걸 자식들에게 주는가?
섹-스를 즐겨라. 그걸 갖고 놀아라! 그건 굉장한 즐거움이다.
왜냐고? 엄밀하게 신체 체험으로만 한정해서 말하면,
섹-스는 너희 몸으로 누릴 수 있는
최대의 즐거움과 거의 맞먹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발 섹-스를 오용하여 성의 순수성과 즐거움을,
그 기쁨과 즐거움의 청순함을 망치지 마라.
권력 따위의 숨겨진 목적을 얻기 위해,
자기애를 만족시키거나 남을 지배하기 위해,
가장 순수한 기쁨과 더없는 황홀경을 느끼거나
함께 나누는 것 이외의 다른 어떤 목적을 위해,
섹-스를 이용하지 마라.
그런 기쁨과 황홀경을 느끼거나 함께 나누는 것이야말로 사랑,
재창조된 사랑이며, 새로운 삶이다!
너희를 더 나은 존재로 만들기 위한 방법으로
내가 아주 근사한 방법을 선택하지 않았는가?
성 에너지의 부정에 대해서는 전에 이미 얘기한 바 있다.
성스러운 그 어떤 것도 부정으로 이루어진 적은 없다.
그러나 너희가 더 큰 진실들을 얼핏이나마 보게 될 때,
너희의 바람은 바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성행위나,
그로 인한 몸의 여러 가지 활동들을
전보다 덜 바라거나 전혀 바라지 않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일부 사람들에게는 영혼의 활동이 가장 중요하고,
훨씬 더 즐거움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어떤 판단도 내리지 말고 각자 내키는 대로 하라.
이것이 섹-스의 좌우명이다.
섹-스에 대한 너희 태도는 삶에 대한 너희 태도의 축약판이다.
삶은 즐거움이요 축복이어야 하는데도,
너희 삶은 두려움과 근심,
“충분치 못함”, 질투, 분노, 비극에 대한 체험이 되어왔다.
섹-스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너희는 섹-스를 억눌러왔다.
너희가 자유분방함과 즐거움으로 자신을 충분히 표현하는 대신에
오히려 삶까지도 억눌러왔던 것처럼.
너희는 섹-스를 부끄러워했다.
너희가 삶을 최상의 선물이며 최대의 즐거움이 아니라,
사악하고 부정한 것이라 부르며 삶까지도 부끄러워했던 것처럼.
삶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고 항의하기 전에,
삶에 대한 너희 집단의 태도를 돌아보라.
세상 사람들의 5분의 4가량이 삶을 시련과 고난,
시험받는 시간, 갚아야 할 업보, 반드시 익혀야 할
혹독한 교훈들이 있는 학교 정도로 여긴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에는 삶을 죽음 뒤에 올 참된 즐거움을 고대하면서
참고 견뎌야 하는 혹독한 체험 정도로 여긴다.
너희 가운데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식을 생각한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고 보면 너희가 삶을 창조하는 행동 자체까지
부끄러워하는 게 놀랄 일은 아니다.
섹-스에 밑줄을 긋는 에너지는 삶에 밑줄을 긋는 에너지다.
그게 삶이다!
끌리는 느낌과 서로에게 다가가거나 하나가 되고자 하는,
강렬하면서도 종종 절박한 바람은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원동력이다.
나는 모든 존재에게 이것을 심어줬다.
그것은 타고난 것, 내재된 것, ‘존재 전체’ 속에 있는 것이다.
너희가 섹-스에 대해서(나아가 사랑과 삶의 모든 것에 대해)
내리는 도덕 규정과 종교상의 제한, 사회적 금기,
관습상의 감정들은 너희가 사실상
자신의 존재를 축복하기 어렵게 만들어버렸다.
태초부터 모든 사람이 항상 원해왔던 것은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이다.
그런데 태초부터 사람들은 전력을 다해 이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어왔다.
섹-스는 사랑, 타인에 대한 사랑,
자신에 대한 사랑, 삶에 대한 사랑의 경이로운 표현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섹-스를 좋아해야 한다. 너희는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러나 남들에게 그렇다는 사실을 말할 수 없을 뿐이다.
너희는 자신이 그걸 얼마나 좋아하는지 감히 드러내지 못하며,
드러냈다가는 성 도착자로 몰리기 십상이다.
그러나 이런 사고방식이야말로 도착된 관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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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inglegend님의 댓글
그리고 지금 우리 사회는 유교적 문화가 뿌리 깊게 잠재되어 있어 그 속박, 억압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면서
성적이지 아니한 것이 고귀하고 정결한 것인 양 말하고 행동하도록 교육을 받아오고 있어...
그런 자연스러워야 할 욕구나 욕망을 일상에서 표출하면 안되는 것으로 여겨지는 동 서양의 유교적, 퓨리타니즘 적 세상에 갇혀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극히 일부의 인사들은 아주 비밀스럽게 자기들만의 공간에서 떳떳할 수 없는, 비난받을 수도 있는 행동으로 그런 욕망을 채우거나 다른 동등한 이들에게 강요하고, 또 그런 과정을 통해 착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논의가 가능한 시공간에서 더 많이 접할 수 있는 그런 통로 또는 장이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대상에 따라 맞추어진, 맞춤형의 성교육, 정치교육 그런 게 구안되고 사회적 동의에 따라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