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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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것이 아닙니다
조선시대 이 씨(李氏)는
대대로 부자였는데
증손, 현손에 이르러 가산을 탕진하고 말았습니다.
이에 어려움을 면하기 위해 한양의 집을
홍 씨(洪氏)에게 팔았습니다.
평소 열심히 일하고 노력한 홍 씨라는 사람은
그렇게 한양에서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커다란 기와집에서 살게 되었지만,
여전히 노력하며 살았습니다.
어느 날 대청의 기둥 하나가 기울어져
무너지려는 것을 보고 수리를 하였는데,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습니다.
새로운 기둥을 세우기 위해 헌 기둥을 뽑아낸 자리에서
어찌 된 영문인지 은(銀) 3,000냥이 들어
있는
항아리가 나온 것이었습니다.
놀란 홍 씨는 급히 수소문하여
집의 이전 주인인 이 씨를 찾았습니다.
이 씨는 홍 씨에게 집을 팔고
검소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홍 씨는 이 씨를 찾아가
은전이 든 항아리는 이 씨의 조상이 간직해 둔
돈이라면서 주려고 했지만, 이 씨가
사양하면서 말하였습니다.
"나는 집을 팔면서 그 집의
기왓장이나 주춧돌까지 몽땅 당신에게 팔았소.
그리고 그 돈이 우리 것이라는 증명할만한 문서도 없으니
그 돈은 당신 것이 맞소."
이렇게 옥신각신하는 홍 씨와 이 씨의 사연이
관청에 전해지자, 관청에서는 조정에 아뢰었습니다.
그러자 임금이 교서를 내렸습니다.
'우리 백성 가운데 이처럼 어진 자가 있으니,
누가 오늘날 사람이 옛사람만 못하다고 하겠는가?'
그리고는 은전을 반씩 나눠 가지게 한 뒤,
두 사람에게 벼슬을 내렸다고 합니다.
조선 후기 때의 시인 조수삼의 문집
'추재집(秋齋集)'에 실려 있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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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운 물건은 주인에게 돌려줘야 해요.
남의 물건을 훔치면 안 돼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어릴 적부터 배우지만,
좋은 것을 보면 견물생심(見物生心)이
생기는 것은 어쩌면 인간의 본성에
가까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하물며 그런 본성을 억누르고,
심지어 자신의 것이라 당당히
주장할 수 있는 큰 재물을 보고도 양보하고,
더 합당한 주인을 찾으려 하는 행동은
크게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 오늘의 명언
세상의 어떤 것도 그대의 정직과 성실만큼
그대를 돕는 것은 없다.
- 벤자민 프랭클린 -
출처:따뜻한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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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inglegend님의 댓글
Michaeel Sendel 교수의 정의 관련 강의에서의 상황 비유가 생각나지만, 갈을 걷는데 천원 짜리가 뒹굴 때, 5천원, 만원, 5만원 지폐가 뒹굴고...
보는 이가 아무도 없다면 이 개별 상황에서의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하지 않나요?
제가 짖궂어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또 이 실제 예화를 들면서 기독인들을 험담하고자 함도 아닙니다.
인간의 본성 내지는 개인적인 도덕적 윤리 의식을 살짝 건드려보고자 합니다.
학창시절 청년 예배 후 특정 지역 대학 운동장으로 친목 모임을 가지러 가던 중 언덕 길에서 천원 짜리가 바람에 날려 굴러왔습니다.
몇 청년은 '어머, 어머...'를 연발하며 보기만 하기도 했고, 어떤 청년은 그 돈들을 황급히 주워 어디서 날아온 것인지 주인을 찾으려는 행동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돈을 찾으려는 이는 눈에 띄지 않았고 결국 이런 그룹의 사람 중에서도 '먼저 주운 사람이 임자'라는 식의 농 비슷한 진담?을 한 이도 있었고, 그럼에도 끝까지 그 돈을 파출소(당시 명칭)로 가져다주려고 했던 이들도 있습니다.
결국 결론은 나중의 친목 모임 뒷풀이 장에서의 비용으로 보태졌습니다만...
또 다른 경험은 몇 십 만원을 주운 경우의 이야기입니다.
간혹 라디오 프로그램 중에 들으면 돈가방을 발견한 택시 기사가 주인을 찾아주라며 방송사 등에 분실물을 맡기는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그리고 최근 외국인들이 보는 한국인들의 놀라운 행동(무인 판매대에 꼭 돈을 내고 물건을 가져가는 것이나, 폰 등이 어느 장소에 일정 기간 있어도 아무도 가져가지 않는다는 것 등)을 담은 영상들을 보면, 먹튀 기사 같은 건 나오지 않아야 할텐데...
쓸데없는 잡설이 길어졌습니다만, 개인의 양심, 도덕률이란 언제 어디에 있어도 한결같아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백이숙제의 고사도 생각이 나는군요.
이제를 한한다던 그 한시의 작자 주인공은 자신도 이런 정도의 변절? 타락 정도를 보이고 있으니, 고사리만 캐먹는다는 이제를 비아냥거리는듯한 내용의 시를 쓴 작자는 자신도 이미 어느 정도 세파에 물들어 있음을 고백하는 꼴이 되어버린 겁니다.
이렇게 말을 빙 둘러 길게 말하는 이유? 저 자신도 그런 경험이 없지 않고...
아마도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내 것 아닌 것들을 다루고 만지고... 원 주인의 것을 제 것인 양 주워다가 훔쳐다가 제 멋대로 쓰다 세상을 뜰 것 같기에, 소유에 대한 개념을 생각하다 한탄스러워진 때문입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아주 어린 시절 동갑인 외삼촌과 여동생에게 주어진 똑같은 선물 중에 더 나은 것을 동생에게 주겠다고 바꿔치기 한 것부터, 초등학교 시절 바닥에 떨어진 짝꿍의 연필을 손으로 슬쩍 가려 돌려주지 않으려 하다 들켜 무안했던 것... 그 이후로도 늘 정말 제 것이 아닌 것에 고집스럽게 애착을 너머 집착을 가졌던 것이 한 두 번이 아닌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는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는 말과, 잠에서 깨어 눈을 뜨는 순간 보이는 모든 것이 우리의 물욕, 소유욕을 자극하는 것들일 뿐인 것에 안타깝기도 합니다.
수의에 주머니가 달리지 않은 의미를 최근 와이프가 말해주더군요. 가져갈 것을 남기지 말라는 뜻이라고...
여기에 색즉시공(色卽是空)을 말하면 너무 제 생각인 것이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