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유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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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유월]
“어머니, 어제 돌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처음으로 사람을 죽였습니다. 옆에서 함께 싸우던 친구들도 죽었습니다. 어쩌면 오늘은 제가 죽을지도 모릅니다. 어머니, 살아서 돌아가고 싶습니다. 우물에서 길어 올린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냉수를 한없이 들이켜고 싶습니다. 어머니, 어머니가 만드신 된장의 상추쌈이 먹고 싶습니다. 살아서 돌아간다면 어머니 품에서 하루쯤 엉엉 울고 싶습니다. 아~ 어머니 놈들이 또 몰려오고 있습니다. 안녕은 아닙니다. 다시 쓸 테니까요.” 학도병으로 참전한 어느 학생의 편지내용이다. 그는 끝내 이 편지를 부치지 못했다. 포항여자중학교 앞 벌판위에 두 눈 부릅뜨고 전사한 그의 품속에서 피에 흠뻑 적셔진 채 발견되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어린나이에 전장에서 죽어야만 했던 애절한 이 편지가 예리한 통각으로 가슴에 파고들어 우리를 눈물짓게 한다.
해마다 유월이 되면 하늘은 호국영령들의 혼으로 가득 찬다. 이 나라 이 강산 하늘아래 순국열사들의 피와 눈물이 스미지 않은 곳 어디에도 없는 까닭이다. 특히 6.25 전쟁의 최대격전지였던 다부동 일대에서 전사자 유해를 발굴하면 온전한 유골이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고 한다. 낙동강전선이 무너지면 대한민국이 지도에서 사라질지도 모를 위기에 처하자 국군은 칠곡군 일대에 최후방어선을 구축하고 북한군과 치열한 격전을 벌였는데 고지를 뒤덮은 시신위로 끊임없이 포격이 가해져 산산이 흩어졌기 때문이란다. 참전용사들은 참혹했던 그때 상황을 이렇게 증언했다. “총 쏘는 법만 겨우 배운 신병들이 전투에 투입되면 이삼 일만에 최고참이 된다. 대부분 하루 이틀 안에 전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산더미처럼 쌓여 부패하는 시신속에 숨어 악취로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면서도 하루에 한 봉지씩 배급되는 건빵을 먹으며 버텼다. 백병전을 치르고 나면 군복은 적군과 아군의 피에 젖어 찐득거렸다." 당시 다부동은 그랬을 것이다. 영마루마저 허물은 무수한 포탄에 울창한 푸른 숲은 재가 되고, 보오얀 흙은 속살까지 핏물로 검붉게 물들었으리라. 조국을 부여잡은 죽음 그 마지막 절규들은 먼 하늘 별들의 귓전에도 사무쳤으리.
전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또 어떠했던가? 그야말로 산자가 죽은 자를 부러워하는 세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식구들 중에 죽거나, 다치거나, 피난 중에 헤어져 생이별을 하지 않은 가정이 없었기에 온 나라가 통곡에 잠겼고, 끊어진 다리를 지나 돌아간 집은 잿더미가 되어 있었다. 초목이 사라진 민둥산에는 풀뿌리조차 마음껏 캐먹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남겨진 자들은 위대했다. 진물이 흐르는 상처를 동여매고 조국 재건을 시작한 것이다. 그로부터 69년, 대한민국은 세계역사상 유례없는 빠른 성장을 거듭하여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되었다.
아파트 담장에 늘어선 장미가 유난히 붉은 유월의 끝자락, 푸른 하늘에서 형형한 눈으로 내려다보는 호국영령들이 우리에게 바라는 것은 오직 이것 하나다. 자유와 민주가 꽃피고 다시는 짓밟히지 않는 더 부강한 대한민국을 만들라는 것이다. 하지만 작금의 시국은 그 어느때보다 정치적 갈등과 국민의 반목이 심하다. 그러나 이것만은 잊지말자. "여당도 야당도 좌익도 우익도 이땅에서 살다가 죽어서도 이땅에 묻힐 것이며, 남겨진 자손들도 이 땅에서 살아갈 것이다. 사람도 바뀌고 정권도 바뀌지만 이나라 이강산은 영원히 남는다. 우리가 지키고 사랑해야 할 것은 조국 대한민국이라는 것을."
출처 - 오늘도 좋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