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글 분류
결
컨텐츠 정보
- 14,376 조회
- 6 댓글
-
목록
본문
결
사과는 조각을 내어 깎는 게
예의라지만
나는 사과를 둘둘 풀어내는 걸 좋아해
짓무른 부위를 풀어낼 때면
상처를 감싸고 있는 붕대를 풀고 있는 것 같아
진물에 찌든 붕대를 풀어줘야 할 것 같아
머그잔 속의 커피를 돌려보렴 물레성형처럼 커피를 돌려보렴
나도 모르게 커피를 왼쪽으로 돌리고 있는 건
어젯밤 우리가
공원 호수를 왼쪽으로 돌았기 때문이야
호수에
내리꽂히는 빗방울들
동그랗게 말고 있는 몸을 점점 커다랗게 풀어가는, 풀다가 사라지는 빗방울들
비 오는 날
호수에는
빗방울의 나이가 겹겹이 자라고 있지
오늘 아침 창밖은
잘 구워진 노을빛
부풀어 오른 구름이 페이스트리처럼 접혀 있네
접혀진 주름과
주름 사이의 바람이
바스라지지 않도록 한 겹 한 겹 풀어내야지
세상의 무늬들은
주름들은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자라나지
- 장요원, 시 '결'
관련자료
댓글 6
/ 1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