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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길) 소중한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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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길) 소중한 희망

 

[소중한 희망]                                  (이철환 글)

 

비 내리는 아침이었다. 화랑의 셔터를 열고 있는 병희에게 누군가 다가와 꾸벅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얼마 전에 이 건물 삼층에 이사 온 사람이에요."

 

"아,예,며칠 전에 이사 오신 분이군요."

 

두 사람은 그렇게 첫 인사를 나눴다. 인사를 나눈 뒤 쓰레기 봉투를 들고 있던 3층집 여자는 우산을 펴고 건물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녀의 등뒤에는 아기가 잠들어 있었다. 병희가 셔터를 열고 화랑 안으로 들어설 때 그의 등뒤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화랑 바로 앞 신호등에 서 있던 3층집 여자였다.

 

"괜찮으시다면 제가 길 건너까지 모셔다 드릴까요?"

 

여자는 쓰레기 봉투를 손에 든 채 말했다. 그녀 옆에는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알루니늄 지팡이를 들고 서 있었다.

 

"맨날 건너는 길이라 아주 익숙한 걸요, 누구신지 고맙습니다."

 

사내는 그렇게 말하며 활짝 웃고 있었다.

 

그때 신호등이 파란 불로 바뀌고 보행 신호음 소리가 들렸다. 사내는 더듬더듬 지팡이를 두들기며 길을 건너기 시작했다. 3층집 여자는 건물 쪽으로 몇 걸음 되돌아오다가 다시 발걸음을 돌려 급히 사내의 뒤를 따라갔다.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화랑에 들어온 뒤로도 병희는 유리창을 통해 계속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사내가 길을 반쯤 건넜을 때, 파란 신호등이 깜박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3층집 여자는 사내의 뒤로 더 바짝 다가섰다. 사내가 길을 채 건너기도 전에 신호등이 빨간 불로 바뀌였을 때, 그녀는 웃으면서 서 있는 차들을 향해 손을 들어 보였다. 그사이 사내는 무사히 길을 건넜다.

 

 병희는 건너편 신호등에 서 있는 3층집 여자를 계속 지켜보았다. 잠시 후 길을 건너오는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입가엔 엷은 미소가 번졌다. 엄마의 등에 업혀 양팔을 내저으며 웃고 있는 아기의 얼굴이 보고 싶어서 병희는 출입문으로 바짝 다가섰다. 그 순간, 병희는 너무 놀라 화랑 안쪽으로 몸을 돌리고 말앗다. 잠깐 동안 자신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가 본 것이 확실하다면 아기의 모습은 너무 충격적이었다. 슬프게도 아기는 오른쪽 눈이 흉한 모습으로 감겨 있었던 것이다.

 

 병희가 3층집 여자를 다시 본 것은 그로부터 이틀 뒤였다. 그가 우편함에서 우편물을 뒤적이는데 누군가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3층집 여자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녀는 아기를 등에 업은 채 한쪽 눈을 꼭 감고 조심조심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어느 일요일 오후,화랑 출입문이 열리더니 3층집 여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의 등에는 아기가 잠들어 있었다. 병희는 반갑게 그녀를 맞아 작업대 한쪽에 있는 의자로 안내했다. 그녀는 의자에 앉아서 벽에 걸린 그림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항상 밖에서만 그림을 봤는데 가까이서 보니까 더 좋네요."

 

 "그러세요? 커피 한 잔 드릴까요?"

 

 "아니요,괜찮아요,조금 전에 마셨거든요, 실은 한 가지 여쭤볼게 있어서 왔어요." 그녀는 잠시 망설이더니 들고 있던 흰색 서류봉투에서 노트만한 사진을 꺼냈다.         "저......우리 아기 얼굴을 그릴 수 있나 해서요, 얼마전 돌 때 찍은 사진이거든요, 이걸 좀 그려 주셨으면 해서......,"

 

그가 받아든 사진 속에서도 아기의 눈은 슬픈 모습을 하고 있었다.

 

"사진이 크고 선명해서 그리기 어렵진 않겠어요."

 

"실은 한 가지 더 부탁드릴 게 있거든요, 어려우시겠지만 제 아기의 오른쪽 눈을 아프지 않게 그려 주실수 있나요."

 

 

 

"그럼요, 그릴 수 있지요,"

 

병희는 갑작스런 그녀의 물음에 당황했다. 그것을 내색하지 않으려고 웃었지만, 어색하게 보였을 그 웃음이 오히려 그녀에게 미안했다.

 

 "벽에 걸린 아기 돌 사진을 볼 때마다 마음이 너무 아팠거든요, 말은 안 하지만 아기 아빠도 그랬을 거예요."

"네,,,,,,"

 

"그 그림이 지금의 모습은 아니지만, 이 아이가 더 컸을 때는 틀림없이 두 눈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 거예요, 하나님께 늘 그렇게 기도하거든요,"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표정은 조금도 슬퍼 보이지 않았다. 

 

 

 

병희는 그 날부터 며칠 동안 힘겹게 아기의 그림을 그렸다. 아기의 오른쪽 눈을 그리는 게 무엇보다도 어려웠다. 다른 부분은 만족스럽게 그리고 나서도 오른쪽 눈동자에 점 하나 찍는 일 때문에 세 번을 다시 그려야 했다. 세번째 그림을 그릴때, 병희는 문득 자신이 그린 작은 눈동자 하나가 엄마와 아기의 소중한 희망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손끝이 떨려왔다. 그리고 숨을 멈추고 나서 아기의 눈동자에 마지막 점 하나를 찍는 순간, 그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그때처럼 진지한 마음으로 그림을 그려 본 적이 없었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병희는 아기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가야, 엄마의 사랑을 믿어, 사랑을 믿는 한 너에게는 희망이 있는거야,"

 

 

 

병희가 3층 여자의 집으로 놀러 간 것은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난뒤였다. 좁은 거실의 한쪽 벽에는 그가 그려준 아기 그림이 걸려 있었다. 아기그림을 보며 3층집 여자는 평화로운 얼굴로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기가 더 크면 아기에게 내 눈을 이식해줄 거예요, 그러면 저 그림처럼 내 아기도 예쁜 눈을 가질 수 있겠지요? 그래서 저는 지금부터 한 쪽 눈으로 살아가는 연습을 하고 있어요, 한 쪽 눈으로 밥을 먹고, 계단을 내려오고, 또 길을 걸으면서,,,,,,그래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병희는 그제야 3층집 여자가 눈을 꼭 감고 계단을 내려왔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아픔이 있다. 그 아픔을 어떻게 이겨내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은 힘들 수도 있고 아름다워질 수도 있다. 빛은 어둠 속에서 더 찿기가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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