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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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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본성>

취미 삼아 산을 다니다가 난생처음 작은 산삼 하나를 발견했다. 조심스럽게 캐다가 장갑을 낀 채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는데 그 순간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의 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산삼을 캐는 도중에 걸리적거리는 잡초를 뽑아내다가 천남성이라는 독초를 만졌던 까닭이었다. 숙종이 장희빈에게 내린 사약의 재료가 되는 맹독성 독초였던 것이다. 계곡물로 눈을 씻어내고 통증이 조금 가라앉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같은 땅 바로 옆에서 나란히 뿌리내려 같은 영양분을 빨아먹고, 같은 햇볕을 쬐며, 같은 공기를 마시지만 하나는 사람을 살리는 명약이 되고 또 하나는 생명을 앗아가는 독초가 된다. 천남성을 산삼밭에 옮겨심어도 그 독성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사물에 부여된 타고난 고유의 특성은 바뀌지 않는 것인가? 사람도 그러할까!”
 
인간의 본성에 대해 맹자와 루소는 사람은 태어날 때는 모두가 선하다는 성선설을 주장했는데 이와 정반대로 순자나 홉스는 사람은 본성 그 자체가 악하다는 성악설을 내세웠다. 서양의 철학자 로크는 사람은 선천적 관념을 지니지 않고 백지상태로 태어나 성장환경에 따라 선악이 결정된다는 후천적 결정설을 제기했다. 이런 주장들은 오늘날까지 반론과 재반론이 이어지고 있지만 확실한 것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적 기질은 분명히 존재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천성적으로 게으르다든가 또는 성격이 급하고 다혈질이라든지, 의지가 박약하고 소심한 성격, 고집이 세거나, 모질고 악한 성품 등 생득적으로 타고난 기질이 이에 해당된다. 

토마스 풀러는 본성에 대해 "늙은 말은 병들어 걷지 못해도 푸른 초원을 그리워하고, 늑대는 이빨을 잃어도 으르렁댄다"라고 했다. 사람도 이와 같은 것일까. 그렇다고 한다면 나는 결코 이 말에 동의할 수 없다. 사람에게는 후천적으로 습득한 학습과 교육, 경험에 의해 선악이나 진위를 식별하고 바르게 판단하며 개념적으로 사유하는 이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성의 함양은 배움의 어느 한 시절로 끝날 일이 아니다. 인생 내내 지속해야 할 과제이다. 그럼 끊임없이 이성을 함양할 수 있게 만드는 발로는 무엇인가? 바로 자기성찰에 따른 반성과 겸양에서 비롯된다. 항상 자기 자신이 옳다고 여기면 개선의 여지도 없다. 독선과 아집이 강한 사람들이 대체로 진보 없는 제자리 걸음 같은 삶을 사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 비롯된다.

이에 반하여 항상 자신을 돌아보며 합리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은 원만한 인생을 살아간다. 이치에 맞는 삶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타고난 팔자가 그런걸.. 천성이 그런 걸 어찌하나.." 이런 말을 자주 하는 사람치고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을 지금까지 거의 본 적이 없다. 

나는  타고난 천성에 대해 이렇게 단언한다. "바꿀 수는 없어도 개선할 수 있고, 제어할 수는 있다. 인간에겐 태생적 지배에 속박당하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이룰 수 있는 인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배우면 능해지고 노력하면 이룰 수 있다."라고.

삶은 그저 운명 따라 세월 따라 흘러가는 것 같지만 실은 자신의 성품에 이끌려 간다. 인생의 방향을 가르는 삶의 여러 줄기가 있지만 가장 큰 줄기는 자기 자신이다. 
세상사 모든 일은 나에게서 시작되어 나에게서 나가고 결국 돌고 돌아 나에게로 되돌아와 종결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끔씩  스스로를 회의적인 시각으로 내면을 들여다봐야 한다. 그리고 객관적으로 관찰하여 내면을 다듬는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지나온 어제들의 열매를 따 먹으며 살아간다. 심은 대로 거둔다는 인생사 영원의 진리를 받들어 스스로 우리 자신을 가꾸어야  한다. 그래야만 타고난 본성을 제어하여 어긋나지 않고 모나지 않는 삶을 영위할 수 있다.

출처 - 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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