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보다 비싼 IT 개발자 몸값... 삼성전자 임원도 쿠팡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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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1.03.06. 오전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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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건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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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W] 인력 쟁탈전… 삼성전자 임원 연봉 50% 올려 쿠팡으로 이직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인공지능(AI) 부문 임원(상무)이 최근 온라인 쇼핑·물류 업체 쿠팡으로 옮겼다는 소식이 업계에서 화제가 됐다. 삼성전자에서 억대 연봉을 받던 기술직 임원이 옮긴 것도 이례적이었지만, 더 놀란 건 기존 연봉의 1.5배에 스톡옵션(주식 매수 선택권)까지 포함된 파격적인 이적 조건이었다.

요즘 국내 IT 업계에선 “개발자가 금(金)보다 더 비싸다”는 말이 나온다. 코로나 이후 인터넷·게임 등 비대면 산업이 급팽창하면서 이 분야의 경쟁력 있는 기술자들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것이다. 인공지능(AI)·빅데이터·클라우드(가상 서버) 등 첨단 정보기술(IT)이 전 산업 분야로 확산되면서 유통·부동산·금융·엔터테인먼트 기업들까지 개발자 유치에 사활을 걸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IT·게임 업계는 소프트웨어 개발 직군 연봉을 한번에 수천만원 올리며 ‘인재 지키기'에 나섰고, 파격적인 조건으로 외부 인재를 끌어오는 데 혈안이 됐다. 쿠팡행을 택한 삼성전자 상무도 이런 스카우트 열풍이 낳은 한 사례다.

사상 초유의 ‘IT 개발자 모시기’ 경쟁은 그러나 필요한 인재를 길러내지 못하는 한국의 현실을 보여준다는 지적도 나온다. IT 업계에선 “대학에선 기업에 필요한 인재를 길러내지 못하고, 경쟁사로부터 경력직 빼가기만 늘다 보니 기업 간 연봉 인상 출혈 경쟁이 빚어지고 있다”는 한탄이 나온다.

직원 연봉 파격 인상하는 게임 업체들

최근 게임 업계에선 연봉 인상 열풍이 휩쓸고 있다. 지난달 초 넥슨이 전 직원 연봉을 단번에 800만원씩 올리고, 신입 사원 초봉을 5000만원으로 책정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넷마블·컴투스·게임빌 등 다른 업체들도 일제히 연봉을 인상했다. 급기야 지난달 25일 김창한 크래프톤 대표가 직원들에게 “개발 직군은 연봉 2000만원, 비(非)개발 직군은 연봉 1500만원씩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크래프톤은 신입 개발자 초봉도 6000만원으로 책정했다. 지난해 국내 대기업 대졸 사무직 평균 초봉이 3347만원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거의 두 배에 이르는 수준이다.

규모가 영세한 중소 게임 업체까지 울며 겨자 먹기로 연봉 인상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직원 250명인 중소게임사인 조이시티는 연봉을 1000만원 올려주기로 했다. 베스파는 임직원 연봉을 1200만원 일괄 인상하고, 베이글코드는 개발 직군의 연봉을 스톡옵션 포함 최소 2300만원 인상할 방침이다. IT 업계 관계자는 “연봉을 올리지 않으면 돈을 더 주는 경쟁사에 직원을 빼앗기게 된다는 위기감에 너도나도 연봉부터 올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연봉 인상 붐은 게임 업계를 넘어 IT 관련 업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배달앱 배달의민족은 최근 내부 개발자들의 연봉을 큰 폭으로 인상해주기로 했고, 인터넷 부동산 업체 직방도 26일 개발자 연봉 2000만원 일괄 인상과 신입 사원 초봉 6000만원을 보장하기로 했다. 직방은 경력 개발자에게는 최대 1억원의 보너스도 준다. SSG닷컴·11번가 같은 전자상거래 업체들도 최근 맞춤형 서비스를 강화하면서 개발자를 공격적으로 채용하고 있다. 판교에 있는 게임 업체의 한 임원은 “최근 2~3년간 쿠팡·토스 등 온라인 기업뿐 아니라 연예 기획사도 막대한 인센티브를 앞세워 개발자를 대거 영입하고 있다”며 “네이버·카카오에서도 1년간 100명이 넘는 개발자가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로 이직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기업들은 고급 인재 유치를 위해 회사 사무실까지 옮기고 있다. 화장품 정보 앱 화해를 운영하는 버드뷰는 지난해 8월 합정동에서 강남으로 사무실을 옮겼다. 수공예 제품 판매 플랫폼인 아이디어스를 운영하는 백패커는 지난해 12월 강남역 사거리 인근에 개발자들을 위한 180명 규모 사무실을 따로 얻었다. 벤처캐피털 업계 관계자는 “‘특 A급 개발자는 강남역 200m 반경 안에만 서식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인재 영입에 회사 입지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업계는 ‘개발자가 없는 것이 아니라, 쓸만한 개발자가 없는 것이 몸값 폭등의 원인’이라는 말이 나온다. 기업들은 혁신적인 방식으로 돌파구를 찾아내는 개발자를 원하는데, 정작 대학을 졸업한 초년생 개발자 상당수는 시키는 일도 제대로 못 해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업계 현장 관계자들의 불만이다. 반대로 최근 들어 AI 등 기존 코딩 방식으로만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분야가 늘어나면서 수학·통계학 지식까지 겸비한 고급 개발자는 이직 시장에서 구하기 어려워졌다.

조대곤 KAIST 경영대학 교수는 “IT 개발자는 프로그램의 용량이나 성능과 직결되는 코딩을 효율적으로 하는 실력이 관건인데 국내엔 직관적이고 간결하게 코딩할 수 있는 사람이 매우 적다”고 말했다. 페이스북의 한 개발자는 “3~4명이 나눠서 해야 할 코딩 작업을 혼자서 해내는 사람들이 있다”며 “이런 인재들은 회사도 요구하는 대로 연봉을 주고서라도 붙잡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건형 기자 defying@chosun.com] [최인준 기자 pe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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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IT, 바이오 등을 다루는 편집국 테크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뉴스레터 '홀리테크'와 과학칼럼 '닥터 사이언스'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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