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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년 베스트 가요 콜렉션

    # 뉴진스를 필두로 한 4세대 걸그룹의 활약! 2023년은 '뉴진스의 해'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닌 듯합니다. 발매되는 곡마다 차트를 점령하였는데요. 상반기에는 'Ditto'와 'OMG'로 인기를 끌었으며, 하반기에는 두번째 EP 앨범 [Get Up]을 발표하며 'Super Shy', 'ETA'로 올 한 해 차트를 석권하였습니다. 4세대 걸그룹은 올해에도 큰 활약을 보여주었습니다. 아이브는 'I AM', 'Kitsch', 'Either Way'로, 르세라핌은 'UNFORGIVEN (feat. Nile Rodgers)', '이브, 프시케 그리고 푸른 수염의 아내'로, 에스파는 'Spicy', 'Drama'로 차트에서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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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년 베스트 가요 콜렉션

    # 4세대 걸그룹 신드롬 2022년은 4세대 걸그룹의 활약이 눈부신 한 해였습니다. 뉴진스, 르세라핌, 아이브, 에스파, 엔믹스, 스테이씨, 케플러 등 4세대 걸그룹이 가요계를 주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4세대 걸그룹 대표주자로 꼽히는 아이브와 뉴진스는 차트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뒀습니다. 아이브는 'ELEVEN'부터 'LOVE DIVE', 'After LIKE'까지 주요 차트에서 연이어 상위권에 랭크되었습니다. 뉴진스는 올해 데뷔와 함께 큰 주목을 받으며 인기를 끌었는데요. 무려 3곡에 달하는 데뷔 타이틀곡 'Attention', 'Hype Boy', 'Cookie'가 모두 사랑 받으면서 입지를 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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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년 베스트 가요 콜렉션

    # 역주행 그리고 브레이브걸스! 2021년 상반기 가요계의 키워드는 '역주행'이었습니다. 지난 3월 '롤린' 군부대 떼창 영상이 인기를 끌며 발매 4년 만에 역주행하였고 브레이브걸스는 데뷔 첫 1위를 거머쥐었습니다. 신곡인 '치맛바람'도 차트 흥행을 거두며, 브레이브걸스는 2021년 역주행의 아이콘으로 등극했습니다. 이 외에도 10년 만에 역주행을 한 아이유의 '내 손을 잡아'와 MSG워너비 커버를 통해 떠오른 '상상더하기' 등 숨어있던 명곡들의 역주행이 돋보이는 한 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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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년 베스트 가요 콜렉션

    # 언택트 시대의 챌린지 열풍 자리잡다! 사상 초유의 코로나 시대를 맞이한 2020년. 지코의 '아무노래'를 시작으로, 방탄소년단의 'ON', 화사의 '마리아', 제시의 '눈누난나' 등 각종 챌린지가 SNS를 더욱 뜨겁게 달군 한해 였습니다. 가요 챌린지는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으면서 마케팅 전략임과 동시에 팬들과의 소통하는 역할을 하는 대세 수단이 되었습니다. 2020년 최고의 해를 보낸 세 아티스트를 꼽자면 이와 같은 듯 합니다. 미니 앨범과 싱글로 큰 인기를 얻었던 아이유, 빌보드 Hot 100 싱글차트 3연속 1위에 빛나는 방탄소년단, 그리고 감격의 첫 정규앨범을 발표하고 글로벌 인기를 확장해 나가고 있는 블랙핑크. 세 아티스트들은 다수의 곡들을 2020년 한 해동안 히트시키면서 큰 활약을 이어갔습니다. 아직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세 아티스트의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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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년 베스트 가요 콜렉션

    # 방탄소년단, 그리고 걸그룹의 활약 지난해에 이어 왕성한 활동을 이어온 방탄소년단. 얼마전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 3관왕을 달성하는 등 올해도 역시 그들의 전세계적인 활약은 빼놓을 수 없겠죠. 다른 어느 해보다 케이팝을 전세계에 알리는 자랑스러운 메신저 역할을 하고 있는 방탄소년단의 '작은 것들을 위한 시'가 2019년도 대망의 1위에 올랐습니다. 여기에 올해는 다양한 걸그룹들이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요. ITZY의 '달라달라'(4위), 'ICY'(67위)를 비롯하여 트와이스의 'FANCY'(21위), 'YES or YES'(24위), 'Feel Special'(91위), 그리고 블랙핑크의 'Kill This Love'(25위)와 마마무의 '고고베베'(74위) 등 차트 전반적으로 걸그룹들의 활약이 돋보인 한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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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년 베스트 가요 콜렉션

    # 더욱 강력해진 K-POP과 아이돌 파워! 2018년에도 K-POP의 영향력은 굉장했는데요. 금년도 연말 차트 1위는 유치원생부터 할머니까지 모두가 따라부른다는 국민송, 아이콘의 '사랑을 했다'가 차지했습니다. 유튜브와 빌보드 등 세계적인 플랫폼에 자신들의 이름을 올리며 주가를 올리고있는 K-POP, 이 기세를 이어 앞으로도 한류열풍이 쭉 이어지기를 응원합니다! # 인디 씬의 차트 침공 올해는 유독 차트에도, 구설수에도 오른 인디 아티스트들이 많았는데요. 그만큼 인디 아티스트들의 메인 차트 진입이 활발했습니다. 연말차트 상위권에 위치한 장덕철(그날처럼, 2위)과 멜로망스(선물, 3위), 그리고 폴킴(모든 날 모든 순간, 4위) 등 많은 아티스트들이 눈에 띄는데요. 특히 멜로망스는 무려 5곡을 연말차트에 올리며 인디씬의 스타로 떠올랐습니다. 오는 2019년에는 어떤 인디 아티스트가 신선한 흐름을 만들어낼지 기대되는데요. 앞으로 벅스에서 함께 지켜보시죠! ^^ 그럼 2018년도 인기곡, 지금 바로 감상해 보세요! ※ 2018년 벅스 연말 종합 TOP 100 데이터 및 2018년에 히트된 노래 중 100곡을 선정, 순위대로 나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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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년 베스트 가요 콜렉션

    # 볼빨간사춘기와 아이유,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약진 2017년에는 유독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의 파워가 두드러졌습니다. 특히 볼빨간사춘기와 아이유는 발매 수록곡 대부분을 차트에 진입시키면서 지난 한 해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요. 자극적인 사운드와 가사 대신 자신만의 감성과 개성 넘치는 가사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이끌어 냈습니다. 한편, 올해에는 약 3년 만에 팬들 곁을 찾는 김동률을 비롯하여 박효신, 정준일 등 명품 보컬 남성 아티스트들의 컴백이 대거 예고되었는데요. 과연 어떤 음악들이 2018년을 채우게 될지 기대가 됩니다. # 도깨비 흥행과 계속되는 드라마 OST 파워! 2017년은 그야말로 '<도깨비>의 해' 였습니다! 드라마의 엄청난 인기와 함께 OST 또한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거의 수록곡 전곡을 차트에 올렸는데요. 드라마의 대표곡, 에일리의 '첫눈처럼 너에게 가겠다'는 2017년 벅스종합차트 1위를 차지하며 그 인기를 보여주었습니다. 해를 거듭할수록 강력해지는 드라마 OST의 힘! 2018년에는 어떤 드라마와 OST가 우리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줄지 벌써 기대가 됩니다. 그럼 2017년 인기곡들과 함께 지난 한 해를 다시 한번 추억해 보세요! ※ 2017년 벅스 연말 종합 TOP 100 데이터 및 2017년에 히트된 노래 중 100곡을 선정, 순위대로 나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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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년 베스트 가요 콜렉션

    # 2016년 걸그룹/여성보컬 러쉬 2016년은 그 어느 때보다 걸그룹/여성보컬 파워가 돋보이는 한 해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연초 방송된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을 시작으로 트와이스(Twice), 여자친구, 에이오에이, 마마무 등 다양한 걸그룹이 활동을 펼쳤는데요. 트와이스의 'Cheer Up', 여자친구의 '시간을 달려서', 원더걸스 ‘Why So Lonely' 등 다양한 걸그룹이 많은 사랑을 받았죠. 여기에 보컬 실력을 앞세운 백예린, 백아연, 이하이, 그리고 솔로로 돌아온 태연과 정은지 등 그야말로 여성 아티스트들의 각축전이 펼쳐졌는데요. 정은지의 '하늘바라기'부터 태연 'Rain', 백아연 '쏘쏘', 백예린 'Bye Bye My Blue' 등 많은 여성 보컬들의 활약이 대단한 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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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년 베스트 가요 콜렉션

    # 빅뱅의 해 YG의 전략은 참으로 치밀하지 않나 싶습니다. 전략적으로 싱글을 주기를 정해서 발표하면서 차트 성적을 극대화했고, 물론 각각의 싱글의 퀄리티도 높았지만요! 벅스 연말차트만 봐도 Top 100 안에 총 8곡을 진입시키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모든 아티스트를 통틀어 100위 안에 가장 많은 노래를 진입시킨 아티스트이기도 한데요. 특히 1위부터 3위는 모조리 빅뱅이었는데요. '뱅뱅뱅', 'BAE BAE', 'LOSER'가 나란히 1,2,3위를 차지하며 저력을 과시했습니다. 멤버중 지디와 태양은 무한도전 가요제에 출연하면서 무도 멤버인 광희와 함께 찰떡궁합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한편, 경쟁관계이기도 한 JYP 박진영 사단은 2016년이 도약의 해가 될 것 같습니다. 박진영 본인도 '어머님이 누구니'로 큰 사랑을 받았고, 백아연의 '이럴거면 그러지 말지', 미쓰 에이의 컴백곡 '다른 남자 말고 너', 컴백 자체가 화제를 모았던 원조 걸그룹 원더걸스의 'I Feel You' 등의 히트 싱글이 줄줄히 이어졌고, 신인 아이돌 GOT7과 여성 아이돌 트와이스를 성공적으로 데뷔시키기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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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년 베스트 가요 콜렉션

    # '썸', '별 그대' 신드롬과 아이유의 재발견 소유 & 정기고의 '썸'은 벅스 연말 종합 TOP100 1위에 오르며 최고의 히트곡으로 선정됐습니다. 올 최고의 흥행 드라마인 <별에서 온 그대>에서도 린의 'My Destiny', 효린의 '안녕', 성시경의 '너의 모든 순간', 케이윌의 '별처럼' 등 드라마의 인기와 함께 노래도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아이유는 리메이크 앨범의 대박 성공으로 또 다른 의미있는 해를 보냈는데요. 솔로가수중에는 아이유의 활동이 가장 빛이 났던 해였습니다. '너의 의미'를 비롯해, '금요일에 만나요', '봄 사랑 벚꽃 말고', '나의 옛날이야기', '애타는 마음', '사랑이 지나가면', '소격동'까지.. 듀엣곡 포함해 가장 많은 곡이 사랑을 받았습니다. 당분간 여성 솔로가수 최정상의 자리를 유지할 것 같은 예감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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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년 베스트 가요 콜렉션

    # 왕의 귀환, 가왕 조용필 아이돌과 오디션 프로그램의 득세 속에 가요계의 발전을 위해 음악적 다양성을 부르짖던 그 즈음 가왕 조용필(사진)의 컴백은 신선한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팬들은 물론 평론가와 뮤지션들까지에게 환영을 받으며 가요 프로그램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또한 벅스 연말 종합차트에서도 쟁쟁한 후배가수들을 물리치고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는데, 'Bounce' 열풍은 그동안 숨죽여왔던 기성세대 가수들을 뒤돌아보는 계기가 됐고, 음악계 전체에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시사하는 바가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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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년 베스트 가요 콜렉션

    # '강남 스타일'로 강제(?) 세계진출 이뤄낸, 싸이 싸이(사진)가 가요 시상식에서 대상을 휩쓸며 2012년 가요계를 평정했다. 싸이는 7월 발매한 정규 6집의 타이틀곡 '강남스타일'의 성공으로 올 한 해 동안 국내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누렸다. '강남스타일'은 한국 가수 최초로 미국 빌보드 메인차트인 '핫 100' 차트 2위에 진입했고, 미국 캐나다 등 해외 각국 아이튠즈 음원 차트 1위를 차지했다. 뮤직비디오는 미국의 팝스타 저스틴 비버의 'Baby'를 제치고 최대 조회 영상 1위에 등극, 10억 뷰를 넘겼으며 최다 추천수로 기네스북에까지 등재됐을 정도다. 이 기세를 몰아 싸이는 MTV 유럽뮤직어워드 베스트 비디오상, 제40회 아메리칸뮤직어워드 뉴미디어상을 수상했으며 영국 BBC, 가디언지 등 해외 언론의 극찬을 받았다. 2012년은 그야말로 '싸이의 해' 였다. [출처 : 한국경제 기사 -싸이 '서울가요대상'도 대상, '2012년 가요계 평정'(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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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년 베스트 가요 콜렉션

    # 2011년 최고 인기곡, 아이유의 '좋은 날' 한국 갤럽에 따르면 2011년 발표된 대중가요 중 가장 좋아하는 가요를 세 곡까지 응답 받은 결과, 아이유(사진)의 '좋은 날'이 1위에 올랐다. '좋은 날'은 올 한 해 노래방에서 가장 많이 불려진 곡으로 발표되기도 해, 2011년 국민들에게 가장 사랑 받은 곡임을 입증했다. 지난 2010년 12월 발매한 음반의 타이틀 곡 '좋은 날'에서 3단 고음 창법으로 대중의 귀를 사로잡았고 오빠, 삼촌팬들의 응원을 등에 업으며 '국민 여동생'으로 떠오른 아이유는 드라마 <드림하이> OST 삽입곡 'Someday'와 [Real +] 앨범의 '나만 몰랐던 이야기' 등 연이어 발표된 음원 역시 큰 호응을 얻었다. 아이유는 정규앨범의 곡들이 사상 처음으로 각종 음원차트의 1~13위를 싹쓸이하는 대기록을 수립했고 지난 11월 29일 정규앨범이 발매된 뒤, 타이틀 곡 '너랑 나'로 국내 주요 온라인 음악사이트인 멜론, 엠넷닷컴, 올레뮤직, 소리바다, 벅스 등에서 2주 연속 주간차트 1위를 석권하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이뿐만 아니라 솔로가수로서는 걸그룹을 넘는 매출을 기록하여 솔로가수 디바로 거듭나게 된 아이유의 최고의 해라고 할 수 있다. [출처 : 헤럴드 경제 기사 - 재발견, 올킬, K팝…3대 키워드로 본 2011년 가요계, 한국 갤럽 조사, 이데일리 기사 - 아이유, 2011년 매출 100억 돌파…음원수익 걸그룹 추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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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년대 베스트 가요 콜렉션

    # 제 2의 아이돌 전성 시대와 한류 열풍 아이돌 음악이 최고의 인기를 지속해 나가면서 아시아 지역은 넘어 전세계적으로 한류가 확산 되기 시작했습니다. 2012년 싸이 신드롬에 이어 방탄소년단의 글로벌 인기는 케이팝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활성화에 따른 싱어 송라이터와 힙합 음악도 주류의 지대로 올라서기도 했습니다. 본격적인 음원 시대에 접어들었으나 사재기 의혹에 대한 공방이 가요계 가장 큰 이슈로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 2010년대 인기를 얻었던 노래 중에서 'MBC 음악캠프', 'SBS 인기가요', KBS 뮤직뱅크' 등에서 1위에 올랐던 곡들과 큰 이슈를 일으켰던 노래들을 기준으로 100곡을 선곡했습니다.(제목 가나다 순 선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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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년 베스트 가요 콜렉션

    # 신인 아이돌 열풍, 미스에이와 씨스타 지난해에 이어 아이돌 열풍은 올해도 지속되었다. 'Bad Girl Good Girl'로 데뷔해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미스에이(사진), 데뷔곡 'Push Push'에 이어 '가식걸'로 연이어 성공을 거둔 씨스타 등이 대표적인 신인 아이돌 그룹이다. 그 외에도 연말 시상식에서 비스트, 씨크릿, 씨엔블루 등이 신인상을 받으며 아이돌의 인기를 계속 이어갔다. 2010년 열린 벅스 뮤직 어워드에서도 아이돌 부문은 총 24명의 후보를 선정할 만큼 아이돌 간 치열한 경쟁을 펼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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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년 베스트 가요 콜렉션

    # 유례 없던 걸그룹들의 열풍 원더걸스와 소녀시대의 성공을 통해 여성그룹의 시장성을 확인한 음반기획사들이 대거 여성그룹을 데뷔시킨 해였다. 그중 이른바 신드롬으로 불리는 걸그룹 열풍은 올 초 소녀시대 'Gee'로 촉발됐다. 그들이 입고 나온 색색의 스키니진은 길거리를 온통 알록달록하게 물들였고, 어린아이에서부터 노인까지 '지지~ 베베~'를 흥얼거렸다. 그동안 음악성에 비해 무대 연출 면에서 평가절하됐던 브라운 아이드 걸스는 타이틀 곡 '아브라카다브라'가 공개되자마자 수직상승해 모든 음원 사이트 뿐만아니라 지상파 차트까지 점령했다‘아브라카다브라’의 시건방춤으로 뮤직비디오의 파격적인 장면들 때문에 지상파 심의에 걸리기도 했지만, 시건방춤이 인기를 모으며 8월 뮤직비디오 차트 1위를 차지했다. '허니', '프리티걸'에서 잠재력을 보였던 카라도 '미스터'의 엉덩이춤으로 크게 어필했는데, 7월에는 두 번째 정규앨범 [Revolution]의 일반판과 한정판이 동시 발매되었다. 이어 뮤직뱅크에서 'Wanna'와 '미스터'로 여태까지 보여주지 않았던 새로운 컨셉으로 화려한 컴백했고, 두 곡 모두 여러 음원차트에서 상위권에 랭크 되었다. 수록곡 중 '미스터'는 안무 중 '엉덩이춤'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됐다. [출처 : K-POP Arhcive 앨범 가수 정보, 경제 투데이 - [2009연예결산③]가요계 유례없는 걸그룹 풍년 기사,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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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년 베스트 가요 콜렉션

    # 발매하자 마자 1위 , 빅뱅과 동방신기 일본에서 활동하다 1년 7개월만에 컴백한 동방신기는 30만 장이 넘는 앨범을 팔아치우며 최강 아이돌 스타임을 입증했다. 동방신기는 '2008 골든디스크상'에서도 대상을 수상했고, 앞서 열린 MKMF에서도 올해의 앨범상을 받았다. 일본에서의 활동도 눈부셨다. 동방신기는 일본 유선 방송기업 USEN이 주최한 '2008년 USEN 연간랭킹'에서 2008년 최다 신청곡의 주인공으로 선정되는 기쁨을 누렸으며, 일본의 '2008 베스트 히트 가요제'에서 2년 연속 골드 아티스트 상을 받았다. 빅뱅(사진)의 활약 역시 괄목할만했다. 음반판매량 집계 사이트에 따르면 빅뱅은 2008년 미니앨범 3집 [Stand Up]을 총 14만 9000장 팔았다. 또 지난달 발매된 빅뱅의 정규 2집 [Remember]도 11만장 이상이나 팔렸다. 빅뱅은 2008년 한해 총 26만여장의 앨범을 판 셈이다. '하루하루', '붉은 노을', '마지막 인사' 등 내놓는 노래마다 히트를 시켰기 때문이다. [출처 : 노컷뉴스 기사 - [NOCUT-2008년 연예계]불황속 가요계, 역시 '아이돌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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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년 베스트 가요 콜렉션

    # 전국의 'Tell Me' 열풍, 원더걸스 1980년대 하우스와 디스코를 현대적인 관점에서 재현한 'Tell Me'는 2007년 가장 큰 히트를 친 대중가요 중 하나이다. 앨범 전체의 레트로(Retro) 컨셉트에 맞춰, 멤버들의 의상과 머리 스타일, 곡의 분위기 모두를 1980년대 복고풍으로 재현해냈고, 타이틀곡인 'Tell Me'는 경쾌한 멜로디에, 'Tell me, Tell me'가 반복되는 중독성 있는 후렴구가 인상적인 곡이다. 원더걸스(사진)의 독특하면서도 따라하기 쉬운 안무는 화제가 되었는데, 곡 초반부에 등장하는 '살랑살랑 춤', 후렴구에 등장하는 디스코를 응용한 '찌르기 춤', 간주 부분에 등장하여 1줄로 서 있던 멤버들이 박자에 맞춰 3줄,5줄로 갈라지는 '감수분열 춤' 등이 대표적인데, 학생/경찰/군인 등 많은 일반인이 안무를 따라해 직접 만든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렸고, 각종 TV 프로그램에는 많은 연예인이 안무를 따라했다. 이러한 관심으로 각종 신문 기사 등에는 '텔미 신드롬', '텔미 열풍'이라는 말까지 등장하기도 했다. 인터넷에서 UCC를 통해 확대재생산 되며 새로운 문화 현상을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얻었다. [출처 : 위키백과, K-POP Archive 앨범 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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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년 베스트 가요 콜렉션

    # 꽉찬 무대 위 13명의 사나이, 슈퍼주니어 HOT와 동방신기를 배출한 SM엔터테인먼트가 만들어낸 13인조 아이돌 그룹 슈퍼주니어(사진)는 소속 멤버들이 엔터테이너로서의 다양한 역할을 하기위한 기획에서 만들어졌다. 데뷔 초 슈퍼주니어는 12인조 프로젝트 그룹이었으나, 2006년 5월 멤버 규현의 영입으로 13인조 정식 그룹이 됐다. 당시 12명이라는 유례없는 초대형 인원수 라는 점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정규 1집 타이틀곡 'Twins'로 첫 활동을 시작한뒤 그 후 후속곡 'Miracle'로 활동을 이어가며 같은 해 싱글앨범 'U'를 발매하였고 5시간만에 40만건 다운로드라는 대기록을 기록했다. 또한 SBS 인기가요로 첫 1위를 거머쥐는 등 최대 전성기를 맞는다. [출처 : 위키백과, K-POP Archive 가수 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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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년 베스트 가요 콜렉션

    # 조용필 이후 한국 공중파 3사 대상, 김종국 2001년 터보가 해체된 이후 리드보컬로서 팀을 이끌었던 김종국(사진)은 자연스럽게 솔로 데뷔를 준비한다. 첫 솔로 앨범은 터보의 향수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듯 보였지만, 2004년 발표한 두 번째 앨범에 수록된 애절한 발라드 '한 남자'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김종국은 비로소 솔로가수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한다. 또한 2005년 발표한 세 번째 앨범에서는 주영훈과 다시 손을 잡고 만든 '사랑스러워'가 인기를 끌며 2005년 조용필 이후 한국 공중파 3사 대상을 휩쓴 유일한 솔로가수가 됐다. [출처 : 위키백과, K-POP Archive 가수 부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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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년 베스트 가요 콜렉션

    # 데뷔하자마자 인기 몰이한 동방신기 동방신기(사진)는 SM 베스트 선발대회를 통해 선발된 학생들을 대상으로 5년간 체계적인 준비 끝에 완성된 야심 찬 프로젝트로 시아준수, 믹키유천, 영웅재중, 최강창민, 유노윤호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멤버는 모두 리드보컬이나 아카펠라를 소화하는 재능을 보인다. 데뷔와 동시에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 서울 가요 대상에서 최초 신인상, 본상 동시 수상하며 인기를 입증했다. 데뷔곡이었던 'Hug'는 세련미 넘치는 팝 발라드로 부담없이 귀에 달라붙는 멜로디와 멤버들의 화음이 돋보이는 동시에 애교스러운 가사와 따스한 첫사랑을 느끼는 고등학교 소년의 이미지로 소녀팬들의 시선을 고정시켰던 곡이다. 이어 발표한 'The Way U Are'에서는 소년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성숙한 남성미로 무장하여 강력하고 파워풀한 댄스와 보컬의 조화를 보여주었다. 또한 차분한 발라드곡 '믿어요' 도 연달아 히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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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년 베스트 가요 콜렉션

    # '효리의 해', 이효리 2002년 4집 이후 활동을 중단한 핑클의 멤버들은 팀을 해체하지 않은 상태로 개인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이효리(사진)는 2003년 8월, 첫 번째 솔로 앨범 [STYLISH..E hyOlee]를 발매했다. 첫 솔로 앨범은 선주문만 7만 장으로 음반 판매량 1위에 올랐고, 한국음반산업협회가 발표한 2003년 연말 순위에서 앨범은 144,182만 장을 팔아 15위에 올랐다. 이후 2004년까지 계속 팔리며 15만 장을 넘는 판매고를 기록했다. 이효리는 첫 정규 앨범으로 MNET 뮤직비디오 시상식, KMTV 가요대전, KBS 가요대상, SBS 가요대전, 서울가요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MBC에서 이수영에게 밀려 그랜드 슬램에는 실패했다. 많은 사람들은 2003년을 "이효리의 해"라고 불렀는데, 이효리의 말과 패션이 거리에 쏟아지는 이른바 '효리신드롬'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당시 연예인 매니저의 80%가 이효리의 팬이였다고 하며, 이효리가 신문 1면에 등장 여부에 따라 신문 판매 부수도 달라졌었다. 또한 몸값도 천정부지로 쏟았지만 CF는 줄을 이었고, KBS의 예능 '해피투게더 시즌1 - 쟁반노래방', MBC의 예능 '타임머신'에서 이효리가 MC를 맡았을때, 시청률이 20%에 웃돌아 대단한 기록을 세우며 '효리 이펙트'라는 단어는 당시 방송 관계자들이 많이 쓰는 단어이기도 했다. [출처 : 위키백과, K-POP Archive 가수 부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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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년 베스트 가요 콜렉션

    # SBS 가요대전 '대상', 보아 보아(사진)는 2000년 8월 25일 '만 13세의 춤추는 소녀'라고 불리며 데뷔앨범 [ID; Peace B]를 발매했다. 동명의 타이틀곡 'ID; Peace b'와 'SARA', '비밀일기' 등 소녀적인 감성을 살린 밝은 댄스 곡과 발라드 곡으로 채워졌었다. 후에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활동을 이어가던 보아는 2002년 4월, 한국에서 두 번째 한국 정규 앨범 [No.1]을 발매했다. 대한민국에서는 보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져 있던 상황이었고, 이와 동시에 타이틀 곡 'NO.1'은 2002년 월드컵과 맞물렸음에도 불구하고 큰 인기를 얻었다. 한국음악산업협회의 음반 판매량 집계에 따르면 [No.1·늘..]은 2002년 한 해 동안 54만 장의 판매량을 기록했고, 이 기록은 2002년 발매된 전체 음반들 중 4위를 차지하는 기록이다. 보아는 이 앨범에서 후속곡 'My Sweetie'와 발라드 곡 '늘..' 등으로 활동하다가 8월에 2집 활동을 마감했다. [출처 : 위키백과, K-POP Archive 앨범 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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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년 베스트 가요 콜렉션

    # 얼굴 없는 가수의 흥행, 브라운 아이즈, 왁스 나얼과 윤건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브라운 아이즈(사진)는 2001년 세련되고 감상적인 미드템포의 발라드 트랙 '벌써 일년'으로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대대적인 성공을 이루어 냈다. 이들은 어떠한 방송활동도 없이 인기를 끌었는데 멤버들의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 신비주의 전략과, 해외 로케이션 및 유명 배우들이 출연한 뮤직비디오 촬영 등, 당시 일반적인 가요의 홍보전략과는 다르지 않은 과정을 통해서였다. 도시적이고 세련된 어반 R&B 혹은 네오소울로 분류되는 음악을 추구하는 브라운 아이즈는 이듬해 2집 [Reason 4 Breathing?]를 발표하며 데뷔앨범의 성공을 이어나갔다. 1집 [엄마의 일기]를 내놓았던 가수 왁스는 앨범을 홍보하는 동안 정말 단 한번도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 대신 배우 하지원이 왁스의 얼굴을 대신했다.댄스곡 '오빠'가 히트하자, 한 가요 프로그램에서 왁스 대신 립싱크 무대를 선보이기까지 할 정도였다. 덕분에 왁스의 정체를 둘러싸고 사람들 사이에서는 한동안 왁스라는 가수가 따로 존재하지 않으며, 실은 하지원이 왁스 아니냐는 음모 아닌 음모설이 퍼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 소문은 진짜 왁스가 '오빠'를 부르며 데뷔무대를 치러내며 눈 녹듯이 사라졌다. [출처 :위키백과, K-POP Archive 가수 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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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년대 베스트 가요 콜렉션

    # 인터넷의 확산과 아이돌 그룹 시대! 1990년대 중반부터 음반업계는 LP는 생산이 중단했고 CD와 카세트만 제작하고 있었는데, 2000년대 들어 MP3 플레이어의 등장으로 모든 음악을 언제 어디서나 들을 수 있게 되면서 음악 소비를 촉진/확산시켰습니다. 또한 휴대폰 벨소리와 컬러링, 온라인 음원판매의 시대로 새로운 음악시장이 형성된 시기이기도 하죠. 이런 소비의 확산은 아이돌 음악이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인기를 얻게하는 원동력이 됐고 한류'가 시작됐는데요. 2000년 H.O.T.의 북경 공연때 중국 언론이 처음 사용한 용어였습니다. 해외에서의 인기를 바탕으로 대형 기획사들은 비, 보아, 원더걸스, 소녀시대, 빅뱅 등을 국내 및 세계시장에 선보이기 시작했고, 기획사들은 상장 기업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 2000년대 인기를 얻었던 노래 중에서 'MBC 음악캠프', 'SBS 인기가요', KBS 뮤직뱅크' 등에서 1위에 올랐던 100곡을 선곡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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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년 베스트 가요 콜렉션

    # 다시 돌아온 울트라맨, 서태지 은퇴 후 4년 7개월 만인 2000년 8월 11일, 서태지(사진)가 인터넷을 통해 컴백을 알렸고, 2000년 8월 29일, 김포공항을 통해 미국에서 입국했다. 이 날, 김포공항은 수천여 명의 팬들과 수 백명의 기자들로 마비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이어 9월에 서태지 컴백 기념 콘서트를 가졌고 추석특집으로 문화방송을 통해 방송되었는데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일요일에 재방송됐다. 뉴 메탈의 영향권 아래 있는 공격적인 음악이라는 장르적 일관성으로 승부한 음반이 바로 서태지의 솔로 2집 음반이다. 서스테인과 앰프계열 이펙터가 진하게 걸려있는 기타 사운드를 위주로 8비트와 16비트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리프의 향연은 21세기 메탈 사운드 중에서도 이모코어의 큰 영향을 느낄수 있게 한다. 서태지는 전체 대중에게 아직도 큰 영향을 지니고 있는 아티스트 라는 자격으로 대중에게 지금까지 한번도 주류가 아니었던 장르를 전도하는 태도를 보인다. 프로모션 트랙 '울트라맨이야'는 그런 서태지의 태도를 그대로 보여주는 곡이다. '울트라맨이야'를 통해 단 한 번도 국내 주류에서 선보인 적이 없는 뉴 메탈을 선보이자 많은 언론들은 미국의 유명한 뉴 메탈 밴드인 콘이나 림프 비즈킷의 음악을 표절했다는 의혹이 일어났고 이에 대해 기자회견에서 서태지는 "음악을 만들면서부터 그걸 생각하고 있었다. 모든 게 시간이 지나면 해결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출처 : K-POP Archive 앨범 부가 정보,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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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9년 베스트 가요 콜렉션

    # 아이돌 그룹 대전에 합류한 지오디 지오디(사진)는 1999년 1월 데뷔앨범을 발표하며 '어머님께', '관찰' 등을 포함한 다수의 곡들을 히트시켰다. 특히 '어머님께'에서는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라는 대목에서 멤버 박준형의 실제 이야기가 모티브 되었다는 사실이 전해지며 전국민에 마음을 짠하게 하며 히트 했고 이러한 인기를 바탕으로 같은해 히트곡 '사랑해 그리고 기억해'가 수록된 2집 [Exit, 20th Century - Enter The 21st]를 11월에 발표하고 12월에는 SBS 가요대전 인기상을 수상했다. 1990년대 초부터 등장한 대부분 남성그룹이 댄스음악과 비주얼에 초점을 맞춘데 비해, 지오디는 그들과 조금 달랐다. 앨범의 총 프로듀서이자 이들을 발굴해 키워낸 박진영의 흑인 음악에 대한 남다른 이해가 투영된 결과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많은 에너지를 발산하는 댄스가 아닌 좀 더 친화적이고 부드러운 음악으로 네명의 멤버들이 저마다 다르게 돋보였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국내에서 활동하는 남성그룹에게 전환점을 제시했다고도 평가하는데, 이렇듯 지오디의 데뷔 앨범은 당시로써는 상당히 신선한 앨범 이었다. 특히 '어머님께'는 기본적인 라임을 갖춘 랩으로 풀어낸곡의 형태와 샘플링이라는 국내에서 조금은 생소했던 음악 작법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등 음악계에서 보다 더욱 반길 법한 일거양득의 결과를 낳았다. 뿐만 아니라 후속곡인 '관찰' 역시 세련되고 감각적인 영상과 퍼포먼스로 남성 그룹의 이미지를 새롭게 구축하는 좋은 예를 제시했다. 이에 힘입어 그룹은 고른 연려응의 팬을 보유함과 동시에 멤버 어느 하나 더하고 덜하지 않는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 [출처 : K-POP Archive 가수 부가정보, 앨범 부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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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8년 베스트 가요 콜렉션

    # H.O.T. 라이벌 등장! 젝스키스 젝스키스(사진)는 '6개의 수정'이라는 뜻으로 은지원, 김재덕, 강성훈, 고지용, 장수원 등 각기 다른 매력을 가진 6명의 멤버로 이루어진 팀이다. 1997년에 '학원별곡'이 수록된 첫 번째 앨범으로 데뷔한 이들은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H.O.T.와 대결구도를 보이며 가요계에 10대 돌풍을 일으켰다. 1998년에는 멤버 모두가 함께 출연한 영화 정병각 감독의 영화 <세븐틴>이 개봉됐고, 같은 해 댄스그룹으로는 처음으로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단독 콘서트를 가지기도 했다. 영화 <세븐틴>의 수록곡과 신곡을 수록한 3.5집을 발표한 젝스키스는 타이틀곡 '커플'로 10대팬 위주였던 팬층을 20대까지 끌어올리면서 폭넓은 사랑을 받게 되고, 이 앨범을 통해 댄스곡 뿐 아니라 R&B와 발라드까지 다양하게 소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1997년과 1998년, KBS, MBC, SBS-TV 등 3개 공중파 방송의 연말 가요 시상식 본상을 수상하는 최고의 인기를 누렸지만, 데뷔 3주년을 맞는 2000년 5월 18일 공식 기자회견을 가지고 해체했다. [출처 : K-POP Archive 가수 부가 정보, 벅스 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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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7년 베스트 가요 콜렉션

    # 본격적으로 시작된 H.O.T.의 행보 1996년 데뷔한 남성5인조 댄스그룹 H.O.T.(사진)는 'High-Five Of Teenagers(십대들의 승리)'의 약자이며 데뷔 당시 멤버 전원이 10대였다. '전사의 후예'와 '캔디'를 앞세운 데뷔 앨범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가요계를 아이돌 그룹 일색으로 바꾸어버린 틴에이저 그룹 H.O.T.의 '캔디'와 '행복' 활동 당시 최초의 팬 컬러를 소유한 첫 번째 그룹이었으며, 그 후 다른 한국 가수도 이러한 유행을 따르게 되었고, 현재까지 이 경향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다음카페 회원 17만8천 명, 팬카페 최초 10만 돌파, 비공식 집계 25만여 명이다. H.O.T.의 음반이 발매되는 날이면 팬들은 조금이라도 일찍 그들의 앨범을 듣기 위해 음반가게 앞에 줄을 서서 앨범을 구매하곤 했고, 온라인 티케팅이 없었던 당시 H.O.T. 콘서트 표를 예매하기 위해 새벽부터 은행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들의 팬들은 가요계에서도 특히 열정적이기로 유명한데, 2001년 해체 위기 당시 소속사 SM기획 사무실 앞에서 그룹 해체를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며 집단적으로 항의하기도 했으며, H.O.T.의 공연이 있는 날이면, 학생들이 여러 이유를 핑계로 조퇴해 공연장으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 교육청에서 각 학교에 조퇴 금지령을 내릴 정도였다. 또 멤버의 생일이 있는 날이면, 팬클럽 자체에서 큰 체육관이나 학교 운동장 등을 빌려 멤버의 생일을 축하해 주기도 했다. [출처 : 위키백과, K-POP Archive 가수 부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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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6년 베스트 가요 콜렉션

    # 듀오 댄스그룹의 전설, 클론과 터보 고등학교 친구인 구준엽과 강원래로 구성된 클론은 파워풀한 안무와 보컬로 일세를 풍미했던 댄스 그룹이다. 1996년 작곡가이자 프로듀서인 김창환의 주도 아래 발표한 '꿍따리 샤바라'로 가요계를 석권했으며 곡이 수록된 음반 역시도 80만장을 넘기며 공전의 히트 축포를 쏘아 올렸다. '꿍따리 샤바라'는 정말로 기막힌 한방이었다. 정겨운 멜러디와 그 주위에 유머러스한 사운드는 참 쉬운 음악이었지만 누구도 미워할수 없었다. 클론은 단숨에 차트 정상을 차지했고 매끈한 사운드와 잘 빠진 훅으로 사람들의 지지를 얻었다. 후속곡이 였던 '난' 이란 곡은 적절하게 인기를 유도했다. 김종국과 래퍼 김정남으로 이뤄진 터보(사진)는 1995년 데뷔 앨범 [280km/h speed]를 발표하며 힘찬 시동을 걸었다. 데뷔곡 '나 어릴 적 꿈'과 박혜령의 곡을 랩 버전으로 재해석한 '검은 고양이 네로'의 폭발적인 사랑으로 단숨에 인기 댄스 그룹의 대열에 합류했다. 그들은 1996년 발표한 두 번째 앨범 [New Sensation]으로 인기의 꼭지점에 올라섰다. 강렬한 댄스 음악부터 부드러운 발라드까지 소화해낸 음반은 'Twist King', 'Love Is', '어느 재즈 바' 등의 히트곡들을 쏟아냈다. 다른 그룹들의 리드 보컬에 비해 돋보이는 가창력을 소유한 김종국의 보컬과 화려한 춤 솜씨와 랩, 귀에 쏙쏙 들어오는 멜로디를 앞세운 터보는 꾸준하게 히트곡을 발표하며 롱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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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5년 베스트 가요 콜렉션

    # 전국에 룰라 열풍, 룰라 1993년 결성된 룰라(사진)는 최초 이상민(랩), 고영욱(랩), 김지현(보컬), 신정환(랩, 댄스)이 뭉쳐서 결성했고 후에 채리나(랩, 보컬)가 합류하면서 5인조 그룹이 됐다. 이들은 오랜 세월 지속적인 인기를 누리며 많은 히트곡을 배출한 댄스 그룹이다. 룰라 하면 생각나는 화려한 무대 매너, 재미난 가사, 현란한 춤 동작 등을 그들의 성공 요인으로 꼽을 수 있다. 94년 데뷔 앨범 [Roots Of Reggae] 시절, '100일째 만남', '비밀은 없어'로 레게힙합을 선보이며 가요계를 휩쓴 룰라의 인기는 95년 앨범 [날개잃은 천사]로 절정에 달한다. 군복무로 팀을 떠나게 된 신정환 대신 채리나가 합류한 두 번째 앨범에선 '날개잃은 천사'와 '프로와 아마추어'가 연이어 히트하며 대중의 가공할 만한 지지를 얻었다. 음반 판매량 180만 장을 기록했는데, 특히 '날개 잃은 천사'는 흐느끼득 꺽꺽 거리는 이상민의 랩과 자기 골반을 때리는 이지현의 춤이 화제가 됐다. 큰 열풍을 몰고 왔던 '날개잃은 천사'는 음악적 평가와는 무관하게 한국의 90년대 대중문화를 상징하고 있다. [출처 : K-POP Archive 가수 부가정보, 앨범 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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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4년 베스트 가요 콜렉션

    # 레게 음악의 히트, 김건모 1990년대 초반 한국대중음악산업은 최고조로 팽창한 시기였다. 다양한 아티스트들의 출현은 물론, 백만 장은 기본으로 넘겨 팔리는 믿을 수 없는 앨범들이 몇장씩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중 가장 많은 앨범 판매고를 보인 아티스트는 김건모(사진)이다. SBS TV가요 20 에서 1위, KBS 가요톱텐에서는 5주 연속 1위를 했고 KBS 가요대상 대상, 가수상 최고 히트곡상, MBC 한국가요제전 최고인기가요상 등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핑계'가 수록된 2집앨범은 '핑계'가 내 건 레게라는 장르는 그해의 사회 현상이 될 정도였다. 레게 바(Bar)가 생겨났고 TV를 틀었다 하면 '핑계'가 흘러나왔으며 어느 거리를 가도 이 노래가 흘러 나왔다. 레게의 매력이 발산되자 가요계에는 투투, 룰라, 마로니에, 김종환 등 레게곡을 부른 가수들이 쏟아져 나왔으며 거리에는 레게의 색깔로 치장한 패션이 우글거렸다. 음악 또한 다세대의 공감을 얻어냈다. 단번에 캐치되는 멜로디와 세련된 편곡은 마냥 즐거운 동시에 최신적 요소를 놓치지 않았다. 까만 피부에 흑인 필을 구사하며 노래한 김건모의 재능 또한 성공의 요인으로 보고있다. [출처 : 위키백과, K-POP Archive 앨범 부가 정보, 채널예스 문화뉴스 - 명반 리뷰 ‘국산레게’의 시작 - 김건모 <핑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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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3년 베스트 가요 콜렉션

    # 김수희, 신인가수들 제치고 가요대상 휩쓸다 댄스곡이 이미 가요계를 장악해가던 시점에서 나온 김수희(사진)의 '애모'는 대중들의 많은 요청으로 1990년대 대한민국 가요계를 주름잡던 김건모, 신승훈과 신예 아이돌 댄스 가수 서태지와 아이들 등의 신인 가수들을 제치고 KBS 가요대상 대상과 MBC 10대 가수가요제 대상, 한국 노랫말 대상을 수상해 이색적인 결과를 낳았다. 호소력 짙은 허스키 음색과 애절한 가사로 사랑받았던 김수희의 '애모' 히트과정은 시사적이다. 세대 초월적인 사랑을 받고있는 이 노래는 발표 즉시 반응을 이끌어낸 히트곡은 아니다. 1990년 발표된 '애모'는 3년이 지나서야 애틋한 가사말의 사연이 대중에게 소개가 된 후 열풍을 일으켰던 아날로그 히대의 전형적인 슬로우 히트곡 이라 할 수 있다. 김수희의 '애모'는 '1993년 가장 많이 방송된 노래' 1위는 물론 갤럽에서 조사한 '가장 좋아하는 가수와 노래' 부문에서도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또한 대학가요제를 경연을 앞드고 조사된 대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트로트 가요 에서도 1위로 선정되었다. [출처 : 주간한국 라이프 [우리시대의 명반·명곡] 김수희 '애모',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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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2년 베스트 가요 콜렉션

    # 신드롬, 서태지와 아이들 서태지와 아이들(사진)의 1집은 대중가요사에 한 일이 많다. 랩가사 시대를 열었고 음악에 비트를 넣었으며, 가수들이 격렬하게 춤을 추기 시작했다. 서태지와 아이들을 통해 대중가수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인지 또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서태지와 아이들에 대한 사회적인 걱정들은 10대들의 응집된 목소리를 불러내고 문전박대 당했던 그의 랩음악은 대중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한때 랩 한줄 없는 댄스가요를 찾기 힘들 정도로 신드롬을 만들었다. '난 알아요'는 리듬 대신 비트를 집어넣은 본격적인 힙합 앨범으로 이는 당시 상당한 음악적 쇼크였다. 힙합 비트와 댄스 리듬이 결합되었으며 멜로디 대신 랩 위주로 음악이 구성됐다. 이러한 구성은 차후 90년대 댄스 그룹들의 구성요소에 원형이 되었다. 선풍적인 인기를 몰고 다녔던 서태지와 아이들은 TV저널 올해의 스타상, 서울가요대상 최고 인기상, 스포츠서울 올해의 가수상, 대한민국 영상음악 대상 골든 디스크상, MBC 10대 가수 가요제 최고 인기 가요상과 신인 가수상, KBS 가요대상 15대 가수상 등 그해 가요계에 부여된 모든 상을 휩쓸었고 [Yo! Taiji]는 데뷔 음반으로는 최다 판매량인 180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출처 : K-POP Archive 앨범 부가정보,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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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1년 베스트 가요 콜렉션

    # 찌르기 춤 열풍, 심신 1991년 '오직 하나뿐인 그대'를 통해 방송차트 9주간 1위라는 기록이 말해주듯 폭발적인 성공으로 각인됐던 심신(사진)은 밴드 Burning Stones와 외인부대(임재범의 동명의 밴드와는 다른)을 통해 익혀왔던 록 발성 바탕으로 뉴웨이브풍의 댄스 넘버 '오직 하나뿐인 그대'와 슬로우 넘버 '그대 슬픔까지 사랑해'를 담은 데뷔앨범 [심신]으로 기록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이 해에 KBS 가요대상 신인상, MBC 10대 가수가요제 10대 가수상, 제2회 서울가요대상 신인상, 제6회 골든디스크상 신인가수상, KBS 연예가중계 올해의 가수상 등등 신인상을 휩쓸며 1991년은 그의 이름을 빼놓고는 논의를 진전시킬 수 조차 없는 한 해가 되었다. [출처 : K-POP Archive 앨범 부가정보,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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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0년대 베스트 가요 콜렉션

    # 가요계의 혁명, 테크노 뮤직 & 아이돌 시대 돌입! '음악대통령'이란 호칭이 처음 등장했습니다. 1992년 남성 트리오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은 국내 가요계를 통틀어 가장 센세이셔널한 이슈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인기를 넘어 신드롬으로 이어졌고, 음악 뿐만 아니라 패션까지 신세대의 상징처럼 유행됐습니다. 또한 90년대 초에 전국적으로 노래방이 등장하면서 기성세대들도 이 노래방 문화에 참여하게 됐고 컴퓨터 음악의 발전과 함께 테크노 음악이 인기를 얻었습니다. 1996년 사전심의가 폐지되면서 거침없는 신세대들의 직설적인 표현이 담긴 노래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듀스, 클론, H.O.T., DJ DOC, S.E.S., 핑클, 젝스키스, 베이비복스 등 아이돌 그룹들의 전성기도 시작됐습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 못지 않게, 90년대 발라드 시대를 점령한 신승훈과 밀리언셀러 시대를 연 김건모의 등장 또한 90년대를 설명하는 핵심 키워드로 얘기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1990년대 인기를 얻었던 노래 중에서 '가요톱텐'과 '뮤직뱅크'에서 1위에 올랐던 100곡을 선곡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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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0년 베스트 가요 콜렉션

    # 수록곡 대부분 인기얻었던, 변진섭 변집섭(사진)은 1987년 MBC 신인가요제를 통해 데뷔했다. 1988년 발표한 1집에서 '홀로 된다는 것', '네게 줄 수 있는 건 오직 사랑뿐', '새들처럼', '너무 늦었잖아요' 등의 히트곡을 양산했다. 이 앨범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1989년에 발표한 2집은 변진섭의 최고작이자 한국 발라드 음악에서도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는 앨범인데, 이 음반 역시 '희망사항'을 비롯하여 '너에게로 또 다시', '숙녀에게', '우리의 사랑이 필요한 거죠', '저 하늘을 날아서' 등 수록곡 거의 전부가 히트하면서 경이로운 판매고를 기록했다. 이 음반으로 1990년도에 인기를 얻은 변진섭은 가수왕을 차지하기도 했다. 여기서 노영심과 함께한 '희망사항'은 재치있는 가사로 국민가수 대열에 그 이름을 올릴 수 있게 한 곡으로 무엇보다 그의 깨끗한 음성과 유연한 고음처리가 청자들로 하여금 그의 곡을 편안하게 수용할 수 있도록 했다고 할 수 있다. [출처 : 위키백과, K-POP Archive 앨범 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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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9년 베스트 가요 콜렉션

    # 80년대 후반 불어닥친 박남정의 인기! KBS 예술단에서도 잠시 활동했던 박남정(사진)의 데뷔는 1988년 '아! 바람이여'가 수록된 1집을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는데 그는 여기서 브레이크 댄스를 기초로 만들어진 안무를 선보이며 가요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다. 이 바람은 이어 발표한 2집으로 돌풍으로 바뀌는데 '널 그리며', '사랑의 불시착'이 연이어 가요톱10 순위 프로그램의 정점에 오르며 1989년 10대 가수상을 수상하였다. 김완선, 소방차 등이 댄스 가수로 미리 자리를 잡긴 했지만 노래뿐 아니라 안무가 유행하는 댄스 가수들의 인기 공식은 사실상 박남정으로부터 출발했다. 박남정의 2집 앨범은 춤은 마이클 잭슨을 따라하고 있는 가운데, 1970년대적 트로트 디스코의 음악적 환경을 고수하고 있는 박남정의 아이덴티티가 드러나는 음반이다. 청춘 그룹 사운드 스타일의 멜로디라인이 전자악기들의 사운드와 결합한 이 곡에서 박남정은 댄서블한 전주와 간주를 통해 개인기를 선보일 수 있는 공간을 확보했다. 그가 작곡한 '널그리며'는 무대위에서 보여줬던 'ㄱㄴ댄스'로 더 유명해 졌으며 전형적인 5도권 멜로디 라인과 스피디한 키보드 연주가 어우러져 영미권 댄스 트랙에 중독되지 않은 당시의 대중에게 큰 인기를 얻어냈다. 이로써 박남정은 80년대 후반 아이돌 스타로써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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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8년 베스트 가요 콜렉션

    # 풀잎 같은 노래인생, 최성수 최성수(사진)는 1985년 산울림 김창완 지휘의 프로젝트인 '꾸러기'의 일원으로 참여한 곡 '아주 옛날에는 사람이 안 살았다는데'로 가요계를 두들겼지만 그 시기에는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1986년에 발매한 '남남'이라는 곡이 가속도가 붙어 인기가도를 달렸고 1988년 3집 '동행에서는 타이틀곡 '동행'이 가요톱텐 5주연속, 통산 6주간 1위를 하는 등 인기몰이를 한다. 이뿐만 아니라 '풀잎사랑', '해후', '기쁜 우리 사랑은' 등 4곡이 연이어 히트를 친다. 1989년의 4집 에서도 '나의 슬픔에 그대는 타인', '축제와 나그네' 등 다수의 곡이 호응을 얻었지만 1990년도의 5집과 6집이 큰 히트를 하지않더니, 1993년도에 내놓은 7집은 참패를 당하게 된다. 이후 최성수는 음악적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출처 : 다음 블로그 - 줄리어드 맘의 추억의 팝송, YTN 이슈&피플 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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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7년 베스트 가요 콜렉션

    # 한국 팝 발라드의 시작, 유재하 유재하(사진)는 1962년 서울에서 태어나 한양대 작곡과에서 정식으로 음악교육을 받은 재원이었다. 당시 언더그라운드 진영에는 유재하처럼 이론과 실기를 두루 겸비한 뮤지션이 흔치 않았기 때문에 그의 재능은 두드러질 수밖에 없었다. 대학 재학 시절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키보드 연주자로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시작했는데 이때 조용필은 훗날 유재하의 대표곡이 되는 [사랑하기 때문에]를 자신의 7집 앨범에 먼저 취입했다. 대학 졸업 후인 1986년에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1987년 8월, 자신의 데뷔 앨범이자 유작 앨범이 된 [사랑하기 때문에]를 서울음반을 통해 발표하게 된다. 이 음반은 당초 '음정이 불안하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심의에서 반려가 되었으며, 발매 초기에도 평론가들로부터 호의적인 평가를 얻지 못했다. 클래식 음악의 화성학과 갖가지 악기들의 음색을 터득한 유재하는 기존의 대중 가요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노래를 만들어, 음악 관계자들조차도 '노래가 이상하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이 앨범은 라디오를 통해 조금씩 인기를 얻어가며 거의 모든 곡들이 골고루 사랑 받았다. 음반 발표 후인 1987년 11월 1일 새벽 3시 경,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동 강변북로 부근에서 술에 취한 친구가 몰던 승용차를 타고 가다가 차가 중앙선을 침범하여 마주오던 택시와 정면 충돌하여 사망했다. 향년 26세. 사망후 일반인들과 음악 전문가들 사이에 유재하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으며, 유재하의 음악은 재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스물 여섯해라는 짧은 삶에 단 한 장의 앨범을 남겼지만 '발라드의 아버지'라고 불리며 김광진, 신승훈 등의 후배 음악가에게 큰 영향을 미쳤고, 유재하를 기리는 유재하 음악경연대회는 1989년부터 계속되고 있다. 혹자는 만약 유재하가 살아 있었다면 대한민국의 대중음악, 특히 발라드의 역사에 있어 큰 변화를 가져왔을 거라 말한다. 비록 한장의 유작 앨범이 우리가 접할 수있는 그의 음악 전부이지만, 그만큼 우리 한국 음악계에 전해진 그의 음악적인 역량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출처 : 위키백과, K-POP Archive 가수 부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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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6년 베스트 가요 콜렉션

    # 원조 만능 엔터테이너, 전영록 전영록(사진)은 1980년대 대한민국 오버그라운드 대중음악계와 연예계를 대표하는 최고의 스타 중 한 명이다. 그의 활동영역은 가수로 시작해서 작곡가, 영화배우, 디제이 등으로 매우 광범위했고 그 모든 분야에서 거의 최고에 가까운 위치에 올랐다. 영화배우 황해와 가수 백설희를 부모로 둔 그는 어려서부터 탁월한 음악적 재능을 뽐내기 시작했다. 1979년 '듀오'라는 팀으로 전국 노래자랑에 참가, 그 재능을 공식적으로 알린 전영록은 이듬해부터는 가수 겸 연기자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 중반에 이미 여러 장의 앨범을 통해 인기를 얻은 그였지만 정작 그가 대중들에게 스타로서 각인이 된 건 1981년 발표한 사실상의 데뷔작 [전영록]을 발표하고부터였다. 그 후에 그는 차례로 '종이학',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 '불티'등을 히트하였고 1986년도에 발표한 '내사랑 울보', '그대 우나봐' 등으로 인기세를 몰아갔다. 그는 1986년과 1987년에 각각 KBS와 MBC 두 방송국으로부터 소위 '가수왕'으로 뽑혀 최고의 자리에 올랐으며 그 해에 전영록 주연의 영화 <돌아이2>와 <돌아이>' 또한 흥행하며 당시 최고의 출연료를 받았다. 주체할 수 없는 끼를 발산하던 전영록은 명실공히 10년 이상을 최고의 아이돌 가수 중 한 명으로 군림했다. [출처 : 위키백과, 다음블로그 Jazz&Life, Story - 7080가수(89)- 전영록, K-POP Archive 가수 부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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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5년 베스트 가요 콜렉션

    # 1980년대 포크의 전설, 해바라기 해바라기(사진)는 1980년대 포크를 대표하는 남성 듀오다. 이주호를 중심으로 멤버가 계속 바뀌면서 '모두가 사랑이에요', '내마음의 보석상자' 등을 남긴 그들은 1970년대 포크의 맥을 이어 1980년대에도 활발한 활동을 펼쳤던 드문 사례였다. 각종 쇼 프로그램 및 순위 프로그램에서도 얼굴을 볼 수 있었고 이정선, 한영애 등이 활동했던 1970년대의 동명 4인조 혼성그룹을 탈퇴한 이주호는 박성일, 유익종과 함께 트리오 유리벽을 결성했다. 그러나 박성일이 탈퇴한 후 2인조 체제로 1983년 해바라기의 이름으로 첫 앨범을 발표했다. 첫 앨범은 다운타운과 대학가 중심으로만 알려졌지만 비슷한 시기에 발매된 2집에서 '다시 사랑할 수 있어요'가 큰 인기를 끌면서 1집도 시간차를 두고 재조명 받았다. 솔로 가수 아니면 그룹 사운드가 주로 출연하던 TV 쇼프로그램에서 기타 두 대를 치며 화음을 들려주는 해바라기의 모습은 이색적일 수 밖에 없었고, 그런 이들을 두고 당시 언론에서는 '한국의 사이먼 앤 가펑클'이라는 애칭으로 부르곤 했다. [출처 : K-POP Archive 아티스트 부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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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4년 베스트 가요 콜렉션

    # 강변가요제 대상, 이선희 '폭발적인 가창력의 소유자'란 말로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이선희(사진)는 1964년생으로 대학교 1학년이던 1984년 강변가요제에 '4막 5장'이라는 학교 서클 이름으로 출전, 대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이 때 부른 이세건 곡의 'J에게'는 엄청난 인기를 누리며 1984년 말 각종 시상식을 휩쓸었다. 폭발적인 가창력과 소년같은 헤어 스타일과 바지만 고수하는 옷차림으로 건전과 규율을 요구하던 제 5공화국의 이미지와 맞춰지면서 보이시한 매력으로 '언니부대'를 만들었고, 11월 25일 KBS 가요톱10에서 5주 연속 1위를 하며 큰 인기몰이를 하여 KBS 방송 가요대상 신인상, MBC 10대가수가요제 최고 인기가요상, 신인상, 10대 가수상으로 최초 3관왕에 오르는 등 데뷔 때부터 종횡무진 활약했다. [출처 : K-POP Archive 아티스트 부가정보,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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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3년 베스트 가요 콜렉션

    # KBS 가요대상 여자 디바, 윤시내 윤시내(사진)의 가요계 데뷔는 그녀의 나이 불과 일곱 살 때 이루어졌다. 이미 천부적인 가수의 소질을 가지고 있던 그녀는 앳된 목소리 속에 온 몸으로 부르는 듯한 끼가 느껴지는 곡 '나는 열 아홉 살이에요'를 영화 <별들의 고향>에 삽입하며 이름을 알렸다. 1978년 그녀의 이름을 걸고 발표된 첫 솔로앨범에서 '내마음 너무도 몰라', '난 모르겠네' 등을 히트시켰지만, 실질적인 그녀의 인기 가도 시작을 알린 노래는 1979년 발표된 2집의 수록곡 '열애'였다. 인기 가도를 올리던 윤시내는 수험생들의 원성을 자아내며 차트의 정상을 지켰던 '공부합시다'라는 곡으로 마침내 1983년도에 KBS 가요대상 여자부문 대상을 수상했지만, 후에 1980년대 초반과의 영광과는 너무나도 대비되는 쓸쓸함으로 우리에게서 잊혀졌다. [출처 : K-POP Archive 인물 부가정보, IZM- Artist 윤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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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2년 베스트 가요 콜렉션

    # 조용필을 위협하는 새로운 라이벌, 이용 1982년에는 조용필의 대항마로서 처음으로 이용(사진)이라는 강력한 라이벌이 등장했다. 데뷔앨범은 내놓자마자 인기몰이를 했고 그해 가을 '잊혀진 계절'은 말 그대로 대박을 터뜨렸다. 이용은 '잊혀진 계절'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당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던 1982년 'MBC 10대가수가요제'에서 조용필을 제치고 최고 인기가수상을 수상했다. 1980~86년에 이르기까지 MBC 10대가수가요제에서 조용필의 아성을 무너뜨린 가수는 1982년의 이용이 유일했다. 당시 수상자 발표와 함께 위풍당당하게 등장하며 '감사합니다'를 외치던 이용의 모습은 오늘날까지도 명장면으로 회자되고 있다. 자연스레 조용필과 이용은 라이벌 관계를 형성했고, 이들의 팬클럽은 그야말로 '오빠부대'를 몰고 다니며 서로 신경전을 벌였다. [출처 : 네이버 블로그 조용필 (위대한 탄생) ----> (레전드)|작성자 JOHN CENA, K-POP Archive 인물 부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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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1년 베스트 가요 콜렉션

    # KBS 가요톱10 첫 방송 1981년 2월 10일 국내 최장수 가요프로그램이었던 가요톱10이 첫 방송을 시작했다. 당시 KBS-1TV로 화요일 저녁 7시 45분부터 8시 35분까지 50분간 하지훈 & 박혜리의 사회로 진행됐는데, 첫 방송 1위 후보곡은 조용필의 '촛불'과 송창식의 '가나다라'였고, 첫 1위곡은 '촛불'이 치지했으며, 이후 7주 연속 1위를 기록한다. 골든컵 제도를 신설하는 등 국내 간판 순위 방송으로 인기를 모았으며, 1998년 2월 폐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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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0년대 베스트 가요 콜렉션

    # 다양한 대중가요의 공존시대 1980년 11월 정부가 컬러TV 방영을 허가하면서 본격적인 컬러시대로 접어들게 되는 1980년대는 이에 맞춰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이 공존하는 시대였습니다. 1980년대를 통틀어 빼놓을 수 없는 가수가 바로 조용필 인데요. '가왕'이라는 수식어처럼 80년대 최고의 가수로 한 시대를 이끌어 갑니다. 1980년 방송통폐합 등 사회적 이슈에 따라 불황에 잠시 접어들면서 음반계는 살아남기 위해 메들리 음반'을 출현시키게 됐는데요. 이때 떠오른 가수가 주현미와 김연자였습니다. 또한 1983년 KBS '이산가족찾기'에서 '잃어버린 30년'으로 떠오른 설운도와 함께 성인가요의 신 부활시대를 열었습니다. 강변가요제가 낳은 스타 이선희, 원조 아이돌 전영록이 인기를 얻었고, 백두산, 송골매, 다섯손가락, 부활, 시나위, 들국화 등의 그룹과 김완선, 박남정, 소방차 등 댄스가수들이 역시 같이 공존하며 음반계 호황을 이끌어 갔습니다. 이문세로 시작된 '발라드'의 시작은 변진선, 유재하로 80년대를 완성하게 되고, 록발라드의 이승철, 댄스트로트의 송대관, 태진아 등이 대중가요의 다양성을 더하게 됐습니다. ※ 1980년대 인기를 얻었던 노래 중에서 '가요톱텐'에서 1위에 올랐던 100곡을 선곡했으며, 가나다 순으로 나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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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0년 베스트 가요 콜렉션

    # 1980년대 가수상, 대상 휩쓸다! 70년대 은퇴선언을 하고 방황의 시기를 보내던 조용필(사진)은 우연히 '한오백년' 노래를 듣고 감명받아 내장산과 속리산 등을 돌며 목소리를 다듬었다. 후에 조용필은 1979년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이라는 팀을 꾸려 다시 나타났다. 다시 무대에 오른 조용필은 단 한 차례 위기 없이 한국 대중음악의 '거장'으로 승승장구했다. 조용필 신화는 '창밖의 여자'라는 곡으로 본격 시작됐다. 이 곡은 당시 라디오 동아방송의 1월 일일연속극 '창밖의 여자' 주제곡으로 만든 노래로, 그의 출중한 작곡 실력과 가창력에 대중은 열렬히 열광했고, '창밖의 여자'를 비롯해 3월에 발매된 조용필 1집 음반은 발매 한달만에 50만 장이 팔리며 당시 전속사였던 지구레코드는 기계를 풀가동 함에도 미처 찍어내지 못할 정도 였다고 한다. 이같은 인기를 배경으로 당시 리사이틀 사상 최고액인 3000만원을 받고 1980년도 추석을 전후해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출처: 가온차트 [1980년] '창밖의 여자', '단발머리', 80년대 슈퍼스타 조용필 신화의 시작, 문화일보 기사 조용필은 누구… '돌아와요 부산항에'로 스타덤, 1980년대 가수상·대상 휩쓸어(김고금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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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9년 베스트 가요 콜렉션

    # 또 다른 명곡 탄생, 심수봉 심수봉(사진)은 1978년 명지대학교 재학중 참가한 제2회 대학가요제에서 자작곡 '그때 그사람'으로 출전해 수상은 실패했으나 가수로 데뷔해 1979년 첫 앨범 [그때 그사람]에 수록된 타이틀 곡의 예상을 뛰어넘는 빅 히트를 기록하면서 주목받는 신인 가수로 성장했다. 데뷔와 동시에 '그 때 그 사람'으로 전국적으로 인기를 얻게 된 심수봉은 데뷔 전 청와대에 초청되었던 인연으로 대통령 박정희는 연회 때마다 심수봉을 초청하여 한동안 청와대 연회가 주무대가 됐다. 하지만 1979년에 궁정동 연회장에 초청되어 노래를 부르던 심수봉은 10.26 이라는 역사의 회오리에 휘말렸다. 수사 진행에 참석하면서 무죄로 판결이 났지만 시대적 상황 때문에 방송금지조치를 당하고 정신병원에 끌려가는 등 갖은 핍박을 당해야만 했고, 가수로 활동할 수 없었던 심수봉은 1980년에는 처음으로 영화 <아낌없이 바쳤는데>에 주연으로 캐스팅됐고 영화 주제곡 OST도 직접 부르기도 했다. [출처 :K-POP Archive 가수 부가정보,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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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8년 베스트 가요 콜렉션

    # '김창완' 형제 파워, 산울림 순수한 흥미 차원에서 세 형제가 시작한 록밴드 산울림(사진)의 등장은 한국 록음악의 특수한 유산이 활화산처럼 급작스레 분출한 것 같았다. 김창완이 1975년 근대를 제대하고 1977년 대학을 졸업한 후에 국내 모 은행에 입사원서를 내놓은 상태에서 김창완 형제는 '무이(無異)' 라는 이름으로 '문 좀 열어줘'로 출전하여 대학가요제 예선에서 1위를 차지하게 되었지만, 큰형인 김창완이 이미 졸업한 상태라 자격조건에 맞지 않는다며 본선 진출자격이 박탈 된다. 그러나 그동안 작곡해 놓은 곡만해도 100여 곡이나 되었고 간단히 그간의 음악활동을 마감하기에는 아쉬움이 너무 많았기에, 형제들은 기념으로 판하나 내고 각자의 길을 가기로 결정하게 된다. 서라벌 레코드사에서 지인들에게 한장씩 돌릴려고 만든 앨범이 우연하게도 라디오 방송에 나오게 되면서 갑자기 히트를 치게 되는데, 그 앨범이 당시 50만장 이상 이라는 엄청난 앨범 판매고를 올리게 되며 데뷔한지 20일만에 스타가 되어 산울림 신드롬을 일으키게 만들었던 희대의 역작 '산울림1집'이었다. 1970년대 후반, 그들은 펑크록 스타일 특유의 아마추어적인 연주와 노래, 프로그레시브 록과 애씨드 록에서 경험할 수 있는 깊이와 혼란, 포크의 순수한 감성, 초현실주의와 동요의 극을 오가는 가사, 이 모든 요소를 실험적이면서 파격적으로, 동시에 대중적으로 혼융했다. 1977년 데뷔 앨범이자 한국 대중음악 사상 '가장 문제적 데뷔 앨범'으로 평가받는 [아니 벌써]로 이른바 '캠퍼스 그룹'이 보여줄 수 있는 싸이키델릭 록 사운드의 극한을 보여주었다. 1978년 해 말, 각 레코드 회사가 집계한 '올해 가장 많이 팔린 디스크 6장'에는 산울림의 음반이 2장이나 포함됐으니 '1978년도는 산울림의 해' 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출처 : 박봉팔 닷컴-[가요] [추억은 노래따라] 7080가수(82) - 산울림, K-POP Archive 가수 부가정보] ※ 1978년에 히트됐던 노래중 50곡을 가나다 순으로 선곡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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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7년 베스트 가요 콜렉션

    # 'MBC 대학가요제' 등장 갑갑한 사회분위기가 계속되던 가운데, 젊은 대학생 아마추어 가수들이 대거 참여한 MBC 대학가요제가 탄생했다. 1977년 9월 3일의 제 1회 대학가요제 시작으로 매년 개최되었지만 2012년을 마지막으로 폐지됐다. 그 영예의 제 1회 대상은 서울대학교 출신의 샌드페블즈(사진)의 '나어떡해'였다. 서울대 농대 재학생 5명으로 구성된 샌드페블즈는 1971년 서울대 농대생 2학년들로 1기가 구성된 샌드페블즈는 1977년도에 6기 멤버가 참여해 영광을 안았다. 당시 멤버로는 리더 이영득을 비롯해, 드럼 김영국, 보컬 여병섭, 오르간 최광석, 베이스 김민수 였다. 이들은 대중가요의 흐름을 변화시키는 엄청난 동력을 부여하여, 이후 1980년대 까지 그룹사운드의 전성기를 열어준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출처 : 다음 블로그 http://blog.daum.net/johny-lee/128 그리운가요, 위키백과, 가온차트 -[1977년]MBC대학가요제라는 젊은 피, 록-포크스타 공백을 메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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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6년 베스트 가요 콜렉션

    # 제주도에서 날아온 얌전한 아가씨, 혜은이 1975년 사회를 떠들석하게 했던 대마초 파동 이후 톱가수들의 부재로 자리가 넉넉해진 가요계의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귀여운 외모의 아가씨가 등장했다. 혜은이(사진)의 히트곡 '당신은 모르실거야'는 1975년도에 발매 되었지만 1년 후에 서서히 라디오를 통해 알려지기 시작해 1977년에는 2집 '진짜 진짜 좋아해', 3집 '당신만을 사랑해'라는 곡이 모두 히트를 기록하면서 인기정상에 올랐고 10대 가수상, 가수왕, 최고 인기가수상등 그 외 다수의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78년에 태평양가요제 입상하여 배우 김자옥과 함께 동남아지역에 화제를 몰고 다녔던 원조한류스타 혜은이의 가요인생 중 패티김 곡의 다수를 작곡했던 길옥윤과의 콤비 작품은 각 방송국, 기타 가요순위차트에서 연속 1위를 기록했다. 가녀린 외모와 창법만으로도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던 그녀는 1970년대 젊음의 아이콘으로 인기를 얻었고, 영화 <제3한강교>로 디스코 열풍을 일으켰다. 최초의 언니부대를 이끌고 다녔고 패션, 헤어스타일등의 유행을 창조한 스타이다. 이 시기에 영화계에도 진출하여 성공하였다. 노래, 연기, 광고모델, DJ 등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며 독보적인 인기를 모았다. [출처 : 위키백과, 가온차트 [1976년]혜은이 이은하 하수영 이수만 김훈..뉴 스타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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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5년 베스트 가요 콜렉션

    # 70년대 청년문화의 상징, '고래사냥' 1967년 윤형주와 함께 트윈폴리오를 결성, 가요계에 데뷔한 송창식(사진)은 1974년 '피리부는 사나이'가 큰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서 솔로로써의 입지를 구축한다. '왜 불러'와 '고래 사냥'은 1975년 크게 히트했는데, 75년 봄에 개봉했고 히피문화의 영향으로 대학생들 사이에 만연된 허무,염세주의 속에서 꿈과 낭만을 찾는 젊은이들의 세계를 그린 ,하길종 감독의 영화 <바보들의 행진> 삽입곡으로 만들어졌다. '떠나간 애인이 자꾸불러 마음 설레게한다'는 내용의 '왜 불러'는 장발단속 경찰에 쫓기며 저항하는 의미로 바뀌면서 대학생들 사이에서의 유행어로 인기를 얻기도 했다. 1975년 MBC가 선정한 최고인기가요로 선정됐으나 영화가 개봉되던 해, 금지곡이 됐다. 젊은이들의 이상을 '고래'라는 상징적인 언어로 표현해 큰 사랑을 받았던 '고래사냥'은 영화중 신체검사에 떨어져 입대하지 못한 주인공이 자살한다는 내용때문에 역시 금지를 당했다. 또한 작사가 최인호는 검열당국에 끌려가 '고래'의 뜻이 무엇인지 추궁을 받기까지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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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4년 베스트 가요 콜렉션

    # 영화 <별들의 고향> OST 영화 <별들의 고향> OST(사진)는 한국 영화 OST 탄생의 시작을 알린 국내 최초의 OST 앨범이다. 물론 영화음악이 존재하기는 했지만 한 영화에서의 음악만 따로 모아 독립적인 음반으로 출시된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영화 <별들의 고향>은 최인호가 20대에 조선일보에 연재했던 소설을 영화화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였고 서울고등학교 동기 동창이기도 한 이장호는 최인호를 찾아가 '이 소설은 무조건 내가 영화화한다!'고 강짜를 부렸다는 일화로도 유명하다. 그렇게 해서 이장호는 감독으로 데뷔를 하게 된다. 경아의 테마로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나는 19살이에요', '한 소녀가 울고있네' 등이 흘러나오며 경아의 상황과 감정을 표현해준다. 별들의 고향은 당시 70년대 시대적 상황을 통속적으로 그려냈고, 영화와 포크음악은 내용상으로나 정서적으로 어울렸다. 이 앨범에서 특히 이장희의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와 윤시내가 부른 '나는 19살이에요'는 빅히트를 했고, 이로 인해 OST 붐이 일기 시작했다. [출처: 채널예스 - 1970년대, 한국 영화 OST가 탄생하던 시절 - <별들의 고향>, 가온차트 [1974년]'별들의 고향', 소설과 영화와 음악이 만났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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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3년 베스트 가요 콜렉션

    # 포크음악의 강렬한 상징, 이장희 입가 상처를 감추기 위해 길렀다는 팔자수염과 가죽재킷, 오토바이 같은 외양도 눈에 쏙 박혔지만 이장희(사진)는 수많은 곡들을 작사, 작곡하고 직접 노래까지 부른 천부적 싱어송라이터로 기록되야 한다. 1972년을 빛낸 데뷔곡 '그애와 나랑은', '무지개'를 비롯해 '그건 너', '자정이 훨씬 넘었네', '애인',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등이 대표적이다. 이장희는 '그건 너'로 1973년도 11월 월간 팝송이 주최한 제3회 한국 팝스 그랑프리 시상식에서 양희은과 함께 포크부문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또한 김세환의 '토요일 밤에', 홍민의 '고별', 패티김의 '이별'과 함께 10만 장 이상의 레코드 판매고를 기록했다. [출처 : 가온차트 [1973년]'그건 너' '작은 새' '편지' '하늘'..국민포크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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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2년 베스트 가요 콜렉션

    # '남진신화'를 이어간다! 1970년 월남파병으로 공백기를 가진 남진(사진)은 1972년 여름 제대하여, '남진신화' 및 '나훈아와 대결구도'를 이어갔다. 첫 작업은 8월 박춘석 작곡의 '마음이 약해서'를 타이틀곡으로 한 '귀국 제1반'으로 이 때까지는 '님과 함께' 같은 경쾌한 리듬을 타기 전의 남진이었다. 복귀와 동시에 MBC 10대 가수 청백전에서 가수왕을 차지하며 3년 연속 가수왕 수상이라는 대 기록을 세우기 된다. 대표적으로 사랑하는 연인에 대한 열정을 담은 '님과 함께'에서도 그렇듯 힘 있고 격정적인 그의 목소리는 청중을 사로잡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또한, 1998년 조선일보가 선정한 '건국 이후 가수 베스트 50'의 10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출처: 가온차트 [1971년]정훈희 김추자 남진 조미미 하춘화..솔로이스트들의 맹활약, K-POP Archive 가수 부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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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1년 베스트 가요 콜렉션

    # 하룻밤 자고 났더니 스타가 된, 나훈아 남진과 숙명의 라이벌로서 1970년대 초반 우리 가요계을 뜨겁게 불태웠던 나훈아(사진). 라이벌 남진의 공백이 눈에 띈 이해 나훈아의 활약은 대단했다. 나훈아는 최초로 '약속했던 길'을 취입하고 오아시스 레코드를 통해 1966년에 당시 19세 나이로 1집 [천리]을 발표하면서 공식적으로 가요계에 데뷔했다. 자신만의 독특한 간드러진 꺾기 창법이 매력적이었던 나훈아는 1968년부터 정통 트로트를 고수하면서 '사랑은 눈물의 씨앗'을 시작으로 '강촌에 살고 싶네', '님 그리워'까지, 대중들로 부터 히트하여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1970년도에는 '두줄기 눈물'로 MBC 10대 가수에 선정되었으며 1971년에는 '가지마오'가 크게 히트하면서 KBS 음악대상을 수상했다. 나훈아는 남진과 함께 경쟁하면서 대한민국의 가요계를 장악하였는데 이 시기에 침체된 대한민국 음악에 활력을 불어넣어 대중가요 활성화를 이끌었다. [출처: 위키백과, 임진모 커뮤니티 사이트 이즘, 가온차트 [1970년]TV에서는 역시 이미자, '아씨' 빅히트 ] ※ 1972년에 히트됐던 노래중 50곡을 가나다 순으로 선곡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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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0년대 베스트 가요 콜렉션

    # 청년문화의 빛과 그림자 1970년대는 청년문화의 시대였습니다. 통기타, 청바지, 생맥주로 상징되는 '청년문화'는 60년대 말 통기타 가수들의 대거 등장과 함께 가요계의 주도권이 청소년층으로 넘어가게 되면서 시작됐죠. 1970년대 포크 열풍의 첫 히트곡은 라나에로스포가 발표한 '사랑해' 였습니다. 어니언스의 '편지', 김정호의 '하얀 나비', 송창식의 '왜 불러', 이장희의 '한잔의 추억', 양희은의 '아침 이슬', 김세환의 '토요일 밤에' 등으로 이어지며 포크가수들의 전성시대를 이루었습니다. 또한 1977년부터 MBC에서 시작된 대학가요제와 함께 강변가요제, 해변가요제, 신인가요제 등의 다양한 가요제가 나오면서 청년문화의 활성화에 큰 기여를 하게 됩니다. 1960년대 그룹 사운드의 한축이었던 신중현은 펄 시스터스와 김추자를 발굴했고, 키보이스, 히식스 등 그룹사운드의 활동이 커져갔지만, 당시 유신정치 등 정치상황과 청년문화가 정면으로 부딪치게 되면서 규제를 받게 되고 대마초 파동'과 공연윤리위원회의 대중가요 대량금지 사태로 이어지며 가요계가 크게 위축됐습니다. ※ 1970년대 인기를 얻었던 대표적인 노래 100곡을 가나다 순으로 나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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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0년 베스트 가요 콜렉션

    # 자작곡 포크음악 대세, 뚜와 에 무와 1970년에 '박인희 작사, 이필원 작곡'이라는 당당한 자작곡으로 히트를 한 곡이 있으니 바로 뚜와 에 무아(사진)의 '약속'이다. 이들은 1969년 제1회 보컬그룹경연대회에서 가수왕상을 차지한 미도파스 출신 이필원이 미도파살롱에서 MC를 보던 숙명여대 불문과 출신의 박인희와 호흡을 맞춘 혼성듀엣이다. 당시로서는 드물게 창작곡을 발표한 싱어 송라이터였다는 점에서 특별했다. 뚜와 에 무아는 1970년에만 2집, 3집을 연이어 내는데 그중 2집 수록곡인 '그리운 사람끼리'로 큰 인기를 끈다. 이들은 트로트 가수가 대세였던 1970년 7월 16일 'MBC 백화스테이지' 출연자 중 유일한 포크계열이었을 정도로 방송에서도 큰 인기를 모았다. [출처 : 가온차트 [1970년] 포크음악/팝송 번안곡의 득세, 중년신사 다음 블로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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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9년 베스트 가요 콜렉션

    # 혜성처럼 등장한 김추자 1969년 최고의 화제거리는 <선데이서울> 창간과 혜성처럼 등장한 가수 김추자(사진)였다(당시 <선데이서울>의 가격은 20원이었다).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를 들고 나타난 김추자는 열여덟 나이에 꼭 끼는 옷을 입고, 강렬한 춤과 폭발적인 창법으로 단숨에 가요계를 점령했다. 당시 별명이 '다이너마이트'였는데, 달러가 아쉬워 월남전에 갔다가 온 김상사가 인간되어 돌아왔다는 노래를 씩씩하게 불러 크게 히트됐고, '담배는 청자, 춤은 추자'라는 유행어가 생길 정도로 김추자의 등장은 최고의 이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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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8년 베스트 가요 콜렉션

    # 국민 민요 '갑돌이와 갑순이'의 등장, 김세레나 끝없는 무대욕심을 가진, 우리나라 신민요의 여왕 김세레나(사진)는 1960년 9월 충남 논산의 '삼거리극장' 공연 때 가수가 무대에 등장할 때 마다 꽃다발을 들고 나와서 톱 가수들의 목에 걸어주던 귀엽고 예쁜 소녀로 얼굴을 알린다. '갑돌이와 갑순이'를 시작으로 다양한 민요곡이 히트하면서 가난한 시골생활을 접고 가족 모두가 서울로 몰려와 새로운 생활이 시작됐다고 하는데, 그러한 열정 때문인지, 당시 가요계의 '쇼'라는 형태의 공연무대에서 가장 인기있는 가수가 나서는 마지막 순서에 자신이 선택되지 않으면 무대에 서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일이 종종 일어는 헤프닝을 빚어, 우리의 대중가요계에선 그녀를 욕심 많은 민요의 여왕이라 불리고 있기도 하다. [출처 : 음악평론가 임진모 커뮤니티 사이트 http://www.izm.co.kr/, 월간경제 풍월 [지종학 기자의 문예계이야기 5] 김세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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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7년 베스트 가요 콜렉션

    # 불멸의 목소리, 배호 1942년 중국 산동성에서 태어난 배호는 막내 외삼촌에게 드럼을 배우기 시작, 음악에 입문했는데, 1년만에 드럼을 마스터하고 '김광빈 악단'에서 주로 연주를 했고, 1960년 부평 미군부대 Camp Market 관할 클럽 등에서 2년간 악단생활을 하면서 본격적인 음악활동을 시작했다. 1964년 낙원동 Prince 카바레에서 밴드 마스터로 픽업되어 '배호와 그 악단'이란 이름으로 12인조의 풀 밴드 구성하여 드럼치며 노래하는 가수로 장안에 알려지기 시작해, 같은해 반야월 작사/김광빈 작곡의 '두메산골'과 김인배 작곡의 '황금의 눈' 등을 발표했다. 1966년 신장염 발병으로 투병 생활 시작하며 '누가 울어', '안개속으로 가 버린 사랑' 등 10여곡 병상 중 당시 노래의 여러 군데에서 가쁜 호흡으로 인하여 가사를 짧게 끊어서 부른 흔적이 있기도 하다. [출처 : http://www.mrsan.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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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6년 베스트 가요 콜렉션

    # 대중가수 최초 국회의원 대중가수로는 최초로 국회의원으로 활약했던 최희준은 '우리 애인은 올드미스', '맨발의 청춘', '빛과 그림자', '하숙생', '종점' 등 히트곡 퍼레이드를 벌였던 60년대 최고의 보컬리스트였다. 최희준은 대학 3학년 때인 1957년, 서울대 장기자랑대회에서 법대 대표로 나가 김광수 악단의 반주로 외국 팝송을 불러 입상을 했는데, 이를 인연으로 미 8군 쇼 단체 '쇼 보트'에 소속되면서 본격적인 가수 활동을 시작했다. 1961년 남산 KBS 스튜디오에서 열린 개국 쇼에서 '우리 애인은 올드미스'를 부른 최희준은 1963년 '진고개신사', 1964년 '맨발의 청춘', '빛과 그리고 그림자', 1965년 '하숙생', '종점' 등을 연속적으로 히트시키며 자가용까지 마련해 국내 마이카 1호 가수가 되기도 했다. [출처 : 최규성의 대중문화 산책 네이버 블로그] ※ 1966년에 히트된 노래중 40곡을 선정, 가나다 순으로 나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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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5년 베스트 가요 콜렉션

    # 국민 꾀꼬리 가수, 박재란 당시 '꾀꼬리 가수'로 통했던 미성의 소유자 박재란이 1965년에 부른 '산 넘어 남촌에는'의 가사는 우리에게 '국경의 밤'이라는 시로 유명한 파인 김동환의 시 이다. 이 노래에서는 박재란의 청순하고 아름다운 목소리, 그리고 그것과 조화를 이루는 전자 기타 반주가 압권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서양 대중가요로 보자면 '컨츄리 웨스턴' 계열의 정서를 느낄 수 있는 이 곡은 봄 햇살에 신록이 짙어지고 그늘에 앉아 한 잔의 차를 마시며 듣기에 아주 적합한 노래라고 할 수 있다. 국민 꾀꼬리 박재란의 '산 넘어 남촌에는'은 그런 사회적 분위기를 타고 1965년에 발표되어 한반도의 절반을 온통 초록빛으로 물들였습니다. 박재란은 곡의 분위기에 따라 창법을 달리했던 몇 안되는 실력파 가수로 1957년 KBS 전속가수로 선발되어 한명숙, 현미와 함께 60년대 여가수 트로이카 시대를 열었다. [출처 : 산 넘어 남촌에는(박재란) - 대중문화 탐방 1 (국내 대중가요 ①)|작성자 nomadludens , 강원도민 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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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4년 베스트 가요 콜렉션

    # 당대 최고의 히트곡 '동백아가씨' 당시 이미자(사진)는 '열아홉 순정'으로 이름을 알린 신인가수 였다. 후에 '동백아가씨'로 한국을 대표하는 가수가 됐고, 수백곡에 달하는 히트곡 중 가장 큰 인기를 누린 대표곡이 됐다. 신성일, 엄앵란 주연의 영화 <동백아가씨>의 주제곡으로 만들어져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 100만 장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는 음반 판매량을 기록하며 인기를 끌었으나, 노래가 일본풍이라는 문제 제기와 함께 금지곡으로 전격 지정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에서 입으로 널리 불린 이 노래는 1987년 6월 항쟁 이후 해금되어 20여년 만에 다시 공적으로 듣고 부를 수 있게 됐다. 당시 금지곡이 된 이유로 정치적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해석과 반공주의 시대였기에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소'의 '빨갛다'는 가사가 문제가 되었다는 설, 경쟁 음반회사의 입김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는 등 여러가지로 해석이 되고 있다. [출처 : 부산 촛불방송 다음 블로그] ※ 1964년에 히트된 노래중 30곡을 선정, 가나다 순으로 나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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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0년대 베스트 가요 콜렉션

    # 소리의 혁명, 대중음악 르네상스 시대 4.19로 시작되어 5.16으로 이어지며 시작된 1960년대 가요계의 가장 큰 변화는 '소리의 혁명' 이다. 1963년부터 LP가 10인치 크기에서 앞뒤 6곡씩 담을 수 있는 12인치 크기로 제작됐고, 1964년부터 스테레오 음반이 제작되기 시작했다. 오디오 또한 급상장 추세에 따라 대중음악 역시 일렉트릭 사운드가 도입되며 남녀중창단, 그룹사운드 전성시대가 펼쳐지는 것도 60년대 소리 변화의 상징이다. 5.16 이후에는 각종 가요단체들이 한국연예협회로 통합됐고, 1962년 방송윤리심의위원회가 발족됐으며, 1967년 1월 한국예술윤리위원회가 발족, 모든 음반은 사전심의를 받아야만 했다. 1961년 한명숙이 부른 '노란 셔츠의 사나이'가 히트된 것을 계기로 장르가 다양해짐과 동시에 번안가요 붐을 이루었고, 한명숙, 최희준, 현미, 패티김 등 '미 8군 쇼' 가수들이 대거 가요계에 진입했다. 1964년 이미자의 '동백아가씨가 빅히트되면서 가요계의 흐림이 다시 트로트로 전환되기도 했고, 키보이스, 애드포 등이 데뷔앨범을 발표하며 이후 그룹사운드 전성시대의 시초가 됐다. 또한 방송국 개국이 급물살을 타 문화방송(MBC,1961년), 동아방송(1963년), 동양방송(TBC,1964년) 등이 KBS와 더불어 다채널 시대를 열었는데, TV도 KBS, TBC, MBC 순으로 개국하며 3대 채널 시대로 자리 잡았다. ※ 1960년대 인기를 얻었던 대표적인 노래 100곡을 선곡했으며, 가나다 순으로 나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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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0~1963년 베스트 가요 콜렉션

    # 우리나라 최초의 허스키 보이스, 한명숙 1961년에 나왔던 노래들 중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이 '노란 샤쓰의 사나이' 이다. 손석우씨가 작사와 작곡을 하였다고 하는데, 가수 한명숙(사진)이 불러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노래다. 이 노래가 유행할 즈음에 장안에서는 사람들이 노란색 옷을 즐겨 입고 거리를 활보할 정도였다고 하는데, 기존의 트로트에서 과감히 탈피해서 스윙, 컨트리와 같은 리듬과 멜로디로 아주 신선한 충격을 줬었던 그런 노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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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0년대 베스트 가요 콜렉션

    # 6.25 한국전쟁과 대중가요 1950년 6.25 한국전쟁 당시 연예인들은 군대에 편성, '군번없는 용사'가 되어 전쟁터를 함께 누볐다. 국방부 정훈국 직속 문예중대가 조직됐는데, 제 1소대는 '신협'으로 순수극단이었고, 제 2소대는 '가협'이라 칭해 일선위문, 전후방 공연활동을 펼쳤다. 임시수도 부산과 대구에서는 쇼나 악극공연이 활발했고, 도미도, 미도파, 오리엔트, 스타 등의 음반사를 통해 앨범이 꾸준히 제작됐다. 한국전쟁기간 동안 한반도는 포성소리와 함께 진중가요가 울려퍼졌는데, '굳세어라 금순아(현인)', '잘자라 전우야(현인)'를 비롯해 실향민들을 위한 망향가 '꿈에 본 내고향(한정무)', '경상도 아가씨(박재홍)', '이별의 부산정거장(남인수)' 등이 인기를 얻었다. 1953년 휴전 환도 이후 대중음악은 빠른 속도로 발전해 갔는데, 서구문화가 본격 상륙하면서 춤바람 열풍'과 함께 맘보 등 경쾌한 리듬의 다양한 곡들이 등장했고, 전통가요의 현대화도 가속됐다. 1957년 레코드가 SP에서 LP(Long Playing Microgrove Record)로 대체되고, 기기도 축음기에서 전축으로 바뀌는 등 일대 혁신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전쟁의 상흔이 점차 아물면서 미 8군 쇼 가수들의 일반무대 활동이 잦아졌고, 영화주제가 전성시대도 펼쳐졌다. ※ 사진은 1936년 데뷔, 1천여곡 가량의 노래를 불러 원조 가요황제로 군림했던 가수 남인수. ※ 1950년대 인기를 얻었던 대표적인 노래 100곡을 선곡했으며, 발표연도 순으로 나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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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40년대 이전 베스트 가요 콜렉션

    # 한국 대중음악의 태동 현재까지 확인된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레코드로 취입된 첫 창작곡은 성악가 안기영이 부른 '내 고향을 리별하고'를 꼽고 있다. 이후 1926년 8월, 소프라노 가수 윤심덕(사진)이 '사의 찬미'와 '부활의 깃붐' 등을 <닛오토> 레코드에서 취입한 후 귀국길에 현해탄에서 투신해 이슈가 되기도 했다. 1928년 빅터와 콜롬비아가 서울지사를 설입한데 이어 29년 영화주제가 '낙화유수'(이정희)가 발표되는데, 이 노래를 현 한국대중음악의 첫 창작가요로 삼고 있다. 당시 소리판으로 불리던 축음기 음반(SP, Standard Playing Record)은 직경 10인치 크기로 앞뒤 한곡씩 담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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